주인눔 백
어떤 공방에서 본 경고판입니다.
하지만, 경고판 같질 않습니다.
모서리가 분명한 판자에 고딕체로 반듯반듯하게 쓰고
글자에 빨간 색을 칠해서 바르게 턱 걸려 있어야 경고판 맛이날텐데
무늬 곱고 곡선이 아름다운 똥가리를 사용한 걸 보면
경고판이 아니라 안내판 같습니다.
나사못 자리를 보면,
짐작으로 뚫어서 걸어 놓고 보니
중심이 맞지 않아서 한쪽으로 기울었던가봅니다.
그래서 대충 그 옆에다가 다시 박았는데
이번엔 반대쪽으로 기울었네요.
당연히 가운데에 다시 박았어야 했겠지만
상품도 작품도 아닌 주인눔께서 쓰실 물건이다보니
까이꺼~~ 대~충 넘어갔는가 봅니다.
재고 따지는 성격이 못 되는 주인눔인가봅니다.
"제갸"라고 썼는데
"ㅑ" 윗 획은 그냥 두고 아래 획만 까맣게 칠했습니다.
이 글자가 끝쪽 어디쯤에 있었다면
앞에 작업한 것이 아까워서 그랬거니 하겠지만
겨우 두번째에 나온 실수고 흔한게 나무 똥가리니
저라면 가차없이 버리고 새로 했을 겁니다.
그냥 그대로 마무리한 걸 보니
실수를 굳이 가리려하지 않는 솔직함이라고
제 나름으로 해석해 봅니다.
어쩌면 주인눔의 짓궂은 장난인지도 모르겠지만...
"문열지 마세요."
분명 야박하게 보이겠지만 뒤집어 보면
아마도 열쇠를 채우지 않고 외출하는 일이 많고
주변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든다는 말이니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뜻이겠지요.
다만, 위험한 기계들 뿐이니 그게 신경 쓰였겠지요.
"주인눔 백"
모질지 못한 성격인가봅니다.
필요에 의해서 경고문을 내 걸긴 했지만
썩 내키진 않았는가 보네요.
그래서 그것 눙칠 양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 했습니다.
내눈엔 "주인눔"으로 보였는데
다른 사람이 "놈"자라고 해서 다시 보니 "놈"자 같기도 합니다만,
주인눔의 성격을 아는지라 얼핏 느낌으로 본 글자는 분명 "눔"이었습니다.
여기까지가
이 경고판에 대한 저의 자의적 해석이었습니다.
악의 없는 장난꾸러기의 웃음 같은 경고판.
이런 여유는
작은 흠 하나도 용납되지 않는
정교한 작업에서의 긴장해소를 위한 자기 처방인지도 모르겠네요.
이 작은 경고판이 나와 무관하게 길가에 뒹굴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쳤거나 지금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렸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경고판에 주인눔의 얼굴이 겹치는 바람에
경고판을 본 게 아니라 주인눔밖에 못 본 건 아니었을지...
소나기 직전의 실상사 원경입니다.
구름을 뚫고 내리는 빛이 아릅답습니다.
그 아름다움까지 덤으로 얻어서 가볍게 돌아왔습니다.
잿털이 참 이뿌지요?
얻어온 재털이에 담뱃재 대신 제 소지품을 넣었습니다.
여기에도 주인눔 들어 앉아서 씨~익 웃고 있습니다...^_^
-07.08.03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