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바람 2007. 10. 4. 12:35

 

 

어쩌면 세상은

삭막한 회색의 벽인지도 모른다.

그늘도 없고 숨을 곳도 없고

때론 비비 꼬이도록 마르기도 하고

온 몸이 젖고 젖어 숨 쉬기 조차 어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는

콘크리트 벽 작은 땀구멍에

가녀린 솜털을 붙이며 그렇게 기어오른다.

 

하지만 그는

기를 쓰고 오르는 그 꼭대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 곳에서 마주 할 허공,

잡고 일어설 그 아무것도 없는,

처음 벽 앞에 섰을 때보다 더 막막한

담장 꼭대기의 허허로운 현실 앞에서

무엇으로

어떻게 생을 버텨야 할지 알지 못한다. 

 

그래도 그는 기어오른다. 

하늘에 오르려기보다 

의지할 작은 땀구멍을 찾는 건지도 모르고

답답한 그 벽을 넘으려는 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작은 줄기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되고 넷이 되고, 그로해서

황량하던 벽은 숲이 되고 

삭막하던 그 곳에서 들리는 가녀린 생명의 숨소리가

기어오를 희망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오른다. 

그것이 어찌 앞서려는 욕심이었겠는가.

어느 듯 줄 지어 선 또 다른 그들이

조금이라도 덜 젖기 바라는 마음에 우산이 되려 했고

땡볕에 지친 몸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그늘이 되려 했고

가끔은 작은 손 팔랑이며 되잖은 춤도 추고

하늘색이 어떤지

무슨 새가 울고 있는지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며

따가운 햇살과 비바람에 바랠지라도

함께하는 그것이 즐거움이라 여겼을 뿐인데

 

햇볕 가리지 말라 하고

시원한 비 좀 맞게 비켜 달라 하고

볼 것도 없는 것 내놓고 코미디를 한다 하고

지네들끼리 논다고 입을 삐죽이지만

그는

철이 없어 코미디를 하고

체통이 없어서 춤추고

인색해서 지네끼리 노는 것이었던가?

담장이...

처음의 답답함 이상의 절망으로 막아 선

그 벽이 그만의 것이던가?

 

담장 꼭대기에 선 그의

그 허망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그들은 오늘도 함부로 말하고

할 말은 정작 아끼지만

그럼에도 그는 또

한 줄,

진솔한 한 줄에

다뜻한 한 줄에

딴지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안부의 한 줄에 의지해

다시

담장에 널린 흉스런 광고 전단을 치운다.

 

사랑하기 때문에...

 

-07.10.04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