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하지와 감자
강 바람
2009. 6. 30. 13:32
20리 길을 걸어 등교하는 아이가 있었다.
공부도 안 하고 수줍음도 많아
수업시간에 손 드는 걸 본 적 없는 아인데
어느 자연 시간에
'하지'가 무슨 날인지 아느냐는 선생님 질문에
아이는 자신있다는 듯 당당한 표정으로 손을 들었다.
신통하게 여기셨는지 선생님께선 그 아이를 지목했는데
벌떡 일어선 아이의 답은 "감자 파먹는 날이요!" 였다.
웃는 녀석들도 있고, 긴가민가 선생님 눈치 살피는 녀석들도 있고....
그러구러 반세기도 넘은 그때 그 일로
내 기억에서의 하지는 감자 였고
감자를 보면 그 아이가 생각 난다.
해는 길고 배는 고프고
양식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못한 때
어른들 몰래 파 먹던 그 아린 생감자.
아이에게 하지는
단지, 감자 파먹는 날이었을 뿐...
점심으로 쩌 먹고 간식으로 구워 먹고
비벼 먹는 건 타박감자가 좋고
고주장으로 비비고 설탕으로도 비비고
김치없이 먹을 땐 물감자가 넘기기 편하고
찔때 살짝 태우면 누룽지가 일품이고
된장찌게에도 넣고 채 썰어 볶아도 먹고
강판에 갈아서 잔 파 깔아 전 부쳐도 좋고
추석송편까지 감자가루로 만들던
여름내내 감자 썩는 냄새로 진동하던 고향...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요즘은 종자개량을 해서
노란색도 있고 빨간색도 있고
심지어는 온통 검은색도 있다는데
그것들은 무슨 색의 꽃을 피우는지 무척 궁금하다.
-09.06.29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