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바람의 쉼터

강 바람 2009. 11. 3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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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찾아 가는 곳.

일테면 바람의 충전소 같은 곳.

 

 

길 하나 건너 아파트단지가 있지만

화덕에 솥 걸어놓고 개밥 끓이는 곳.

 

 

티비도 없고 컴도 없는 이곳의 밤은 마치 

외딴 산골에 홀로 있는 듯하다.

아침 햇살이

창문에 수묵화를 그려 놓고

시간에 따라 슬라이드처럼 변하기도 하는 그림.

아파트에선

이 작은 즐거움조차 누릴 수 없으니

이런 저런 갖은 핑계로 드나드는곳이다. 

 

 

집에 있으면

따신밥 지어서 코앞까지 차려 주는데

이곳에선 스스로 챙겨야 하고

씻는 것도 대충 눈꼽만 떼고 말지만

그래도 그게 좋으니 어쩌랴.

 

 

낙엽이 바람에 쓸려 귀퉁이로 몰리고

늘어지게 누운 나무들이 편안한 곳. 

 

 

이녀석 의외로 오래 살고 있다.

하우스 공방 입구에 생뚱맞은 나무를 심었고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아직 잘 버티고 있다.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다 싶었지만

원래 그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이젠 그 존재를 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재활용하려고 햇살에 내 놓은 일회용 컵에

오후 햇살이 깊숙히 들어오는 곳.

 

 

문만 열면 

손에 잡히고 눈에 머무는 이 소담한 풍경들이 좋아

주말이면 숨듯이 스며드는 곳이다.

 

 

 

끼고 살던 컴과 티비가 없어 답답하지만

지붕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곳.

하지만 이틀밤만 자면 컴퓨터 속이 궁금해지고

전화통화가 길어지는 걸 보면

나도 어느새 그 문명에 길들여졌나보다...^_^

 

-09.11.30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