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겨울나무처럼

강 바람 2010. 12. 22. 23:46

아내와 금정산에 올랐다.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로

아직도 서성이는 가을꽃에 나비가 위로하듯 앉았다.

필 때 피고

갈 때 가야 하건만

철모르는 그들이 곱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르다 멈춰버린 푸석푸석한 살점엔

햇살이 조용히 내려 앉아 함께 졸고

 

 

서있기도 힘겨운 어미 손 끝엔

보내지도 품지도 못한 새끼가 매달렸는데

 

 

갈 길 붙잡은 토우의 어정쩡한 표정이

우는 것도 같고 웃는 것도 같지만

다행이 그들에게 내려 앉은 밝은 햇살이

안쓰러움 대신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혼자였다면 외로웠겠지.

더러 무섭기도 했을 테고

지레 주저앉았을지도 몰라.

길게 드리운 그림자에 대고 눈으로만 말했다.

고맙다고...

많이 미안하다고... 

 

 

짧지 않은 그 길 내내 

아이들 이야기로 출발해서 

아이들 이야기로 도착했다.

년 초에 무슨 약속을 했고

무슨 계획을 세웠는지,

그리고 지금 그 결과가 어떤지도 다 아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그 일들을 새삼 들춰내기 싫어

편안한 아이들을 들먹였는가보다.

 

 

오늘도 어제와 비슷했고

이 달도 지난달과 비슷했으니

새삼 들춰볼 것도 없지만

습관처럼 해오던 시기적 감상으로

무엇이 부족했었는지

무엇이 과했었는지

미진한 건 무엇인지 

특별할 것도 없는 한 해를 잠시 돌아봤다.

 

 

앞서 가던 아내를 불러 세웠다.

사진 한 장 찍자고 했더니

돌아서서 멀뚱한 표정으로 서있다.

"괘안네"

"뭐가요?"

"할매, 아직 몇 십 년 더 써도 되겠구만."

실없는 너스레에 환하게 웃는다.

그래, 그렇게 웃으며 살자.

찰카닥! 

셔터소리가 경쾌하다.

 

햇살 좋은 산등성이에서

삼십년 지기들과 만나

술 한 잔 곁들인 점심 한 끼로

송년회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낙동강에 붉은 노을이 곱게 내려앉아 있었다.

 

 

바쁘게 살았다고

열심히 살았다고

정직하게 살았다고 말하고 싶은데

금년에도 역시 그 말을 할 수가 없다.

내년에는 조금 덜 부끄러운 삶이기를 소망해본다.

앙상한 뼈마디가 비록 허허롭지만

속속들이 들어내고도 당당하게 선 겨울나무처럼...

 

-10.12.22 강바람-

음악 : Er Be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