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에서
울집 할매
"경주 안 갈래?"
"집에 있을랍니다. 다녀 오이소."
예전에 서너 번 따라나섰다가
카페가 어떻고, 나무가 어떻고...자기들끼리 노니
멀뚱하게 앉아있는 게 심심했던지 근래엔 따라나서지 않았는데
"경주 남산에 가면 등산도 좋고 석불도 많은데... 어때?"했더니
등산, 석불이라는 말에 아내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배낭 꾸리는 손이 춤추듯 잽싸다.
안토니오님과 수니님 칠불암 샘물
안토니오님이 준비하신 막걸리와 안주와
모친께서 끓여주신 추어탕으로
배부르고 따신 오월의 하룻밤을 따시게 보내고
약속한 수니님도 오셔서 다섯 명이 경주 남산을 오른다.
무릎이 시원찮아서 등산을 조심하고 있었지만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고생 좀 했다.
중턱에 자리 잡은 칠불암七佛庵...
두개의 암석에 일곱 분의 부처님을 모셨는데
공식명칭은 [경주남산칠불암마애석불군]으로서
최근에 국보로 지정된 보물이란다.
천 이백 여년의 세월에도 의연한 모습 앞에
겨우, 육십 몇 년의 시간은 참 하찮다.
아내는 또 허리를 굽힌다.
암자에서도 굽실굽실...
불상 앞에서도 굽실굽실...
영감 대신에 또 한 번 굽실굽실...
뭘 빌었을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안다.
어제 빌었던 것...내일도 빌 것들...
영감, 새끼들, 손자들, 먼저가신 분들의 복과 평안이었겠지.
저 평상에 엎드린 중생이 한 둘이랴만
그들의 염원 또한 이와 다를 게 없을 테니
[사방불] 중, 남면 - 미륵불
미륵불 앞에 조아리고 선
노란민들레의 염원이 무엇일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사람 하나 돌아나가기 빠듯한
아찔한 이 벼랑 끝에 서서
정과 망치로 쪼아냈을 석공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천년의 시공을 넘어
오늘을 함께할 수 있도록 해준 그들의 마음을 가늠해보며
신선암을 떠나 고위봉으로 향한다..
세월 가늠할 수 없는 바위틈의 소나무 가파른 돌계단과 안토니오님
어렵사리 뿌리내린 소나무가
반쯤 누운 채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데
어떤 이는 꺾이지 않는 의지를 칭찬하고
또 어떤 이는 그의 외로움을 위로하며
갈 길 바쁜이는 무심히 스쳐 지나기도 한다.
비바람에 눕고 더러 꺾일지라도
두려움에 떨거나 주저앉지 않으며
원망하거나 기대지 않고 저 홀로 견디는 것은
잠시 스쳐갈 바람임을 알기에
흔들리면서도 제자리를 지키는 건 아닐지...
돌산을 기어오르고 다시 한 고개를 더 넘어
고위봉에 발자국 찍은 뒤, 왔던 길로 하산하는데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 딛다보니 왼쪽 무릎에 신호가 온다.
아픈 티를 낼 수 없어서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에고~, 누군 고무신 신고도 잘만 걷는데...이 머꼬 덴당...ㅜㅜ
사진을 핑계로 계곡에 앉았다.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든 햇살이 참 따뜻하다.
황갈색 모래와 자갈들...
돌 머리에 부서지는 햇살과 바위 밑의 청록색 그림자...
누군가의 작은 염원을 이고 선 돌탑이
아슬아슬하지만 편안해 보인다.
평지에 선 나는
매일매일을 조마조마하게 살고
매일매일을 뒤뚱거리며 사는데...
잠자는 곰의 형상을 한 바위와 고무신 신고서도 산길 잘 걷는 무무님
느긋하게 하산해서
쌈밥으로 허기를 채우고 서출지로 갔다.
이들 카메라에 무엇이 담겼는지 그건 모른다.
그냥, 이런 모습이 더 좋아 슬쩍 담았다.
가만,...울 할매는 오데갔노??
누군지 알아나 볼까?
아마, 아는 사람은 알겠지.
건너편 뚝에 서서 몰카 한 컷했다.
꽁꽁 언 쭈쭈바를
고개 젖혀 빨고 있는 풍경이 재미있었는데
셔터박자가 맞지 않아 아이 같은 그 풍경을 얻지 못해 아쉽다.
서출지
다음에 오면 연꽃을 볼 수 있으려나?
이요당
삭고 꺾이고 바랬지만
세월의 무게가 편안한 이요당을 보며
나도
저렇게 편안한 낡음이고 찌듦이기를 욕심낸다.
모처럼의 동반외출에서 돌아와
추어탕과 된장 맛을 되새기고
주말시간을 내어 준 인정을 되새기는
아내의 재잘거림이 늦도록 이어지는 걸 보면
다음에는 같이 가자고 애써 꼬실 필요가 없지 싶다.
함께해주신 안토니오님, 수니님, 무무님 고맙습니다...^^
-11.05.17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