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새벽바다에서 강 바람 2011. 9. 4. 18:12 Daybreak 벌초를 마치고 근남포구를 찾았지만 썰렁한 오후의 부둣가가 조는 듯 조용해서 멀거니 빈 바다만 바라보다가 돌아 섰는데 활기 넘치는 새벽 어판장이 보고 싶어 다음날 새벽에 다시 그곳을 찾아갔다. 붉은 해를 보렸더니 해는 보이지 않고 산처럼 피어오른 구름 사이로 물먹은 햇살이 물감처럼 번지고 있었다. 해마다 보는 동해바다고 그때마나 보는 삼엄한 철조망이다. 처한 입장이 부득이했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갇힌 건지 바다가 갇힌 건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보는 바다는 결코 편하지 않았었는데 높고 날카롭던 철조망도 풍상에 무디어져 원래 그랬던 것처럼 풍경의 일부가 되어 서 있으니 묵은 때가 바람 되어 흩어지듯 세월은 사람만 삭이는 게 아닌가 보다. 그나마 금년에는 마을 앞 해수욕장의 철조망은 걷히고 없었다. 수십 년의 고집이 왜 꺾였는지 모르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철조망은 개발억제와 훼손방지의 순기능도 있었으니... 해돋이로 유명한 정동진에서 작은 동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있는 근남포구는 수년 전에도 한 번 소개했던 곳이고 매년 벌초 무렵엔 꼭 들르는 곳이다. 기다리던 배가 들어 오고 있다. 새벽에 나가서 전날 쳐놓았던 거물을 걷어 오는데 웬일인지 갈매기 떼가 보이지 않는다. 예전엔 수십 수백의 갈매기가 호위하듯 따라 오곤 했었는데 갈수록 메말라 가는 바다여서인지 파치 던져 주는 뱃사람도 그것 먹겠다고 아우성이던 갈매기도 없으니 썰렁하다. 드나드는 이 세 척의 고깃배가 없었다면 그 아침의 포구풍경이 얼마나 적적했을까. 기다리던 배가 도착하고 나는 어부의 눈치를 살핀다. '많이 잡았느냐'고 묻는 게 보통의 인사말이겠지만 표정이 말보다 정확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중 나온 아낙들도 내 배 남의 배 가릴 것 없이 먼저 온 배에 달라붙어 그물을 내린다. 아낙들의 표정 또한 밝지 못하다. 요즈음은 개인통신이 발달돼서 마중 나온 그녀들도 이미 알고 있는듯했다. 어부가 손 치켜들며 웃는다. 피식 웃는다. 설명할 수 업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지만 나도 그냥 마주 웃었다. 섣부른 위로보다 어깨 한 번 툭 쳐주는 게 그들의 인사법임을 알기에... 게 잡이 그물이지만 가자미도 걸렸고 새우도 걸렸고 더러는 고동도 걸렸다. 주춤거리던 아내가 한 쪽에 걸려 있는 작업복을 걸쳐 입으며 끼어든다. 서툰 손으로 게를 벗겨내면서 입으로는 연신 '잘하지요? 잘하지요?'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지금 게를 벗기기보다 낡은 필름 같은 추억을 끄집어내는지도 모른다. 같이 끼어들며 딱 체질이라고 추켜세웠더니 조금만 해 보겠다던 작업을 두 상자나 하고야 물러났다. 한마리 더 넣어 가라느니...됐다느니... 더 받으라느니...제값 받는 거라느니... 작은 포구에 두 아낙의 실랑이만 남겨두고 돌아섰다. 바다... 그들에겐 숙명 같은 현실이고 내게는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이다. -11.09.04 강바람-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