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기
"행님, 나무 베러 가입시다"
길곡님의 전화가 무료한 나날의 단비 같았습니다.
반쪽이님 차에 편승해서 김해의 어느 마을에 도착했더니
새로 짖는 집 마당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는데
첫 느낌은 "저걸 와 벨라카노?" 였습니다.
길곡님이 엔진톱 들고 나섰지만 난감한 표정입니다.
옆에는 담이 있고
담 너머엔 옆집 비닐하우스가 있고
안쪽으로는 지붕이 걸리겠고
길쪽엔 전깃줄이 걸리겠고...
엉거주춤한 길곡님 자세가
저걸 우짜노 싶기도 하고
30년된 나무에게 미안타고 말하는 것도 같고
엔진톱 들지 않았다면 쉬하는 자세 같기도 하고...
암튼 올라섰네요.
서툰 강바람보고 올라가라고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컨디션 좋지 않은 반쪽이님에게 시키겠습니까.
파락호님이 있었다면 저 자리는 그의 몫일텐데...
줄 묶어서 당겨가며 잔가지 부터 차근차근 쳐내고
젤 위험한 나머지도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잘랐습니다.
쳐다보자니 길곡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듯했는데
우엣기나 밑에서 보는 사람이 더 불안했네요.
아~ 내가 십년만 젊었어도...ㅋ
이렇게 쳐내고 보니 볼품이 좀 그렇네요.
그대로 장승 깎으면 좋겠네...
때마침 응원차 온 파락호님과 함께 무사히 마무리 했는데
어째 많이 허전합니다.
주인은 낙엽처리가 귀찮아서라지만
노란 가을풍경만으로도 그 수고는 충분히 보상 받을 텐데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었지만
내가 주인의 입장이라면 그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엣기나 삭막한 느낌은 지울 수 없었지만
주인은 어려운 일 처리했고
우리는 나무 한 트럭 구했으니 모두에게 좋은 하루 였습니다.
저는 예전 생각이 나서 더욱 좋았고요.
남은 기둥이 걸리적거릴까봐 정리하고
중장비의 도움을 받아 트럭에 싣고
목재소로 달려서 90mm 두께로 켰습니다.
보관창고에 쌓았는데
어둑어둑 땅거미가 져서 은행나무의 하얀 속살은 찍지 못했네요.
감자탕에 모처럼 소주도 두잔이나 마셨더니
모처럼 따뜻한 하루였습니다.
길곡님, 반쪽이님...
재미난 하루에 끼워 주셔서 고맙습니데이~ ^^
-12.01.14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