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짧은 만남 긴 여운
강 바람
2013. 1. 12. 23:20
사진으로만 보면
겨울이기보다는 볕 좋은 가을 같다.
좀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주말치고는 한적하다.
미나리꽝 옆 두어 뼘 도랑에
계곡물이 얼음사이로 떨어지는데
그림으로는 영락없는 폭포다.
얼음 속에 갇힌 초록이끼를 보니 몸이 부르르 떨린다.
한 걸음 다가서면 두 걸음 물러나고
낙엽 소리에도 줄행랑치던 녀석들인데
모처럼 따사로운 햇살에 졸고 있는지
아니면 데이트에 정신없는지
카메라 겨눠도 요동 없이 받아준다.
한참 따라다니다가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무작정 기다렸더니
포르르 날아와서 갸우뚱거리는 걸 용케 찍었다.
무슨 마음에서인지
코앞까지 날아와 빤히 쳐다보는데
카메라 들이밀어도 미동도 않는다.
시치미 떼고 딴전 피우는가하면
한술 더 떠서
45도 얼짱각도까지 선보이더니
이번엔 아예 돌아 앉는다.
이왕 서비스하는 김에
뒤태까지 찍으라는 건지 아주 대범한 녀석이다.
무시하는 건가?
믿는 건가?
제자리에 앉아 할 짓 다 한다.
햇볕 좋은 겨울한낮에
길가에 쪼그린 할배와 이쁜 새 한마리가
서로 다른 입장에서 찍고 찍히며 잠시 해후했으니
숲에선 아주 예민하던 녀석이
길가에 살면서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풀렸는지 모르고
따뜻한 햇살이
녀석의 긴장감을 풀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세 시간의 산책 중에서
기억에 남은 건 녀석과의 짧은 해우뿐이고
그 1분이 세시간보다 즐거웠으니
살아온 날 셈하기보다
기쁜 날이 며칠이었는지를 따져볼 일이다...^^
요전날 찍은 그녀석 같기도 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정체 좀 갈촤주이소...^^
-13.01.12.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