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The Scent of Love

강 바람 2014. 1. 18. 17:11

The Scent of Love - Michael Nyman 

요즘 뭐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낙동강에 자주 간다니

한 겨울에 웬 낙동강이냐고 되묻네요.

 

 

퇴직하고 한 십여 년 잘 놀았지요.

나무 만지는 사람들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재미난 시간을 보내다보니

십년 세월이 참 우습게 지났다 싶어지더이다.

어찌 보면

아직도 할 일 많을 나이에

허송세월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나무 똥가리 하나 놓고 히덕히덕 웃던 그 시간

이름 없고 볼품도 없는 작은 야생화에 코 박고 들여다 보는 그 순간

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천리길 마다 않던 그 설레임

문득 떠올려 지는 순박한 얼굴들...

내게 언제 이런 소소한 즐거움이 있었든가?

 

 

생을 통털어

웃고 산 시간은 얼마나 될 것이며

즐거운 너털 웃음은 몇 번이나 될 것이며

생각만 해도 히죽히죽 입 벌어질 인연은 또 몇이나 될까요?

그런 즐거움들은 시간에 비하면 비록 찰나에 지나지 않지만

그 찰나에 평화가 있었고

그 찰나에 행복이 있었고

그 속에서만은 순수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얽매이지 않고 소유하지 않을 마음으로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틈을 두어

가고 싶으면 가게 하고 끼이고 싶은 이 끼워 주며

그렇게 들인 정들이 쌓여

풍년의 낟가리처럼 절로 배불러지더이다.

 

 

그 재미로 십년을 잘 보냈는데

이즘은 예전 같잖아서

점점 심심하다는 생각이 자주 들고

멍한 시간이 갈 수록 늘어가니 

자꾸 말라가고 벌어지고 삭아져

웃어 넘길 일도 불끈거리게 되더군요.

그래서 일을 찾았습니다.

뭐 대단한 일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시킬 사람도 없거니와

대단한 일 처리할 열정도 머리도 없다보니

그냥 단순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낙동강 하구에서 철새탐방객 안내하는 일인데

바쁠 일도...힘든 일도...신경 쓸 일도 아니기에

철새 구경하고 사람 만나고 주변 경관 감상하기에 딱이다 싶습니다.

오늘도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래서 호명산인님 번개에도 못 갔습니다.

늦게라도 가렸더니 낼 오전에도 손님이 있다하니

경력 미천한 신입이라 눈치보여 결국 못갔네요.

 

 

오랜 세월에 거쳐 형성된 강하구의 섬과 등을 둘러보고

먼 발치에서나마 이런저런 철새들 구경하며

재잘거리는 어린 학생들과 놀다가 왔습니다.

아직은 찬 바람이 귓볼을 때리긴 하지만

이불 속에 몸 뭍고 티비랑 하루를 보내는 것보다는 백배 좋습니다.

 

퇴직 동기들은 그동안 계속 일하다가

이제부터 놀기로 했다는데

저는 거꾸로 그동안 놀다가 다 늦게 다시 일하네요.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는 동안 이 일에 마음 붙이려 합니다.

그렇다고 이 일에 묶이지도 않을 겁니다.

그것이 이 나이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지 싶어서입니다.

카페지기의 게으름이 또 미안하네요.

소홀함이 마음에 걸려 님들의 이해를 바랍니다.

 

찬 겨울밤

오늘도 따뜻한 밤 되시길요...^^

 

-14.01.18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