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바람 2019. 3. 22. 14:12

저녁놀(박경규 작곡) - Roman De Mareu Orchestra

감나무에 새순이 돋을 즈음 그는 떠나고
찢어진 비닐하우스 갈빗살 사이로
비온 뒤의 삼월바람이 냉랭하게 흐르는데
아내는 그 안에 웅크려 쑥 뜯기에 여념이 없다.
이제,
이 낡은 비닐하우스는 누가 손 볼 것인가.


그의 아흔 해 생 중에
나와 인연 지어진 세월이 육십 하고도 여섯 해라
여덟 살 꼬맹이 적부터 일흔 넷의 오늘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을 인연으로 이어 왔으니
그 세월만으로도 특별하지 않은가.
그런 인연을 덤덤하게 배웅하고 돌아왔는데
하~참...
뒤늦게 치오르는 감정은 또 무엇이었던지 
 바람만 흐르는 게 아니라는
새삼스럽지도 않은 사실을 곱씹으며
소주 한잔하고 푹 자고나니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라
어제까지의 코끝 찡한 사연들일랑 접어두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식탁에 오른 쑥국의 남다른 향기에도
숙취였음인지 숟가락 든 채 멀뚱하게 있었더니
아내는
특별한 것이니만큼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말라 재촉하고 
나는 빈 그릇을 기울여보이며 속없이 너스레를 떨었다.
간밤의 숙취였기보다
뭔가를 되씹느라 멀뚱했었는지도 모를 일이니
이렇듯 그의 흔적은 잔상(殘像)으로 남아
아주 가끔씩이라도
내 가는 길 앞이거나 혹은 뒤에서 서성일 것이며
나는 또 그때마다
육십 몇 년의 긴 인연을 되새김 할 것이다.



팔월이나 구월 쯤
벌초를 목적으로
그의 농기구창고 앞에 다시 서겠지만
그곳이 새삼 낯설어질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멈칫거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녹슨 낫과 예초기를 내려다보며
“인니아가 왜사 이래 돼싸?”
느릿한 그의 혼잣말까지 들을지도 모르겠다. 



자형...그때 다시 뵙겠습니다..._()_ 


-2019.03.22. 하나뿐인 당신의 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