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주절주절 강 바람 2006. 8. 21. 14:20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오가는 차들의 불빛만 저마다 바쁘고 비가 오는지 마는지 허공은 어둠뿐인데 다만, 바퀴에 깔린 자지러드는 물소리와 불빛 속에서만 하얗게 반사되는 빗줄기로 비가, 봄비가 옴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밤의 공기는 아직 찼었지만 자꾸 봄비였다고 우기고 싶네요. 그렇게 한밤을 뒤척이다가 새벽을 맞았고 오늘 하루 종일 여기저기 가족들과 나들이하고 아이들이 가고 없는 조용한 분위기속에서 아내와 둘이 맥주 한잔했네요. 제게는 조금 특별한 날이다 보니 이 밤에 또다시 이런저런 상념에 젖습니다. 해마다 오늘이면 버릇처럼 돌아보니 기억 한편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은 통사공과의 인연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바늘 끝 같았던 내 성정이 스스로도 놀라리만치 누그러져 있음은 그 연의 덕으로 얻은 참으로 소중한 것임에 무엇보다 그것이 고맙더군요. 빈터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꼬물거리는 그 불을 빌미로 서성이던 발길들이 모여들었지요. 핑계 없어 다가서지 못한 걸음들 부끄러움 가득한 서먹한 얼굴들 쭈뼛거리며 둘러앉은 낯선 얼굴들... 그는 내게 낯설고 나는 그에게 낯설지만 마음에 무슨 길이 있겠습니까. 내가 열면 열리는 게 마음이고 보여주면 보이는 게 마음이려니 굳이 갈길 정해주지 않아도 마음 저 스스로 흐르고 스며들어 그냥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둘러앉았습니다. 무엇을 얻기 위함도 내세우기 위함도 아니었기에 그토록 편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닥불이 사그라질라치면 누군가 나뭇가지를 보태고 또 다른 사람이,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이... 통나무 장작이든 작은 똥가리든 크고 작음을 따지는 이 없이 그렇게 불은 이어져 왔고 그 모닥불에 언 마음을 녹였으니 됐다, 그러면 된 거다 싶었지요. 빙긋 웃고 안부 묻고 만나서 즐겁고 좋은 일 나누고 어려울 때 토닥거리며 귀한 작품으로, 따뜻한 茶 한잔으로, 진솔한 이야기로 빈 가슴 채웠으니 그래, 그거면 됐지 많든, 적든, 빈손이든 따질 일 뭐겠습니까? 도우미 하라 해서 나무도 모르고 공예도 모른다 했더니 그래도 하랍디다. 내 나이 몇인데 무슨 놈의 카페 도우미냐 고마 치아라 그랬는데 행님, 행님...하도 꼬드기는 바람에 나이 많으면 많은 대로 걸맞은 몫이 있으려니 싶어 오냐, 알았다. 딱 내 몫 만큼만 할끼다 작정하고 그래! 손님 오면 인사나 하고 등업신청 오면 그거나 하면 되지 싶어 그러마 했고 "반갑습니다." "환영합니다." "등업 되었습니다."를 열심히 하며 모닥불 살피는 불당번이나 할란다 했지요. 그거면 됐지 뭘 더하랴 싶었는데 더러 오물을 집어넣는 몹쓸 사람들 때문에 자고나면 온 게시판이 빨간 글로 도배되어 "이런! 거시기한 넘들! 뭐 묵고 할기 없어서..." 투덜거리며 누가 볼세라 얼른얼른 삭제하고, 잘 타고 있는 불 헤적거리지나 않는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지나 않을지 그런저런 것들을 살피며 걷어낼 것 걷어내고 돋울 것 돋우고 태워서는 안 될 것 만류하느라 내키지 않지만 싫은 소릴 할 때도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기도 했으니 주인 행세가 아닌 지키려는 마음이었음을 아시려는지... 번개다 노가다다 푼수 없이 끼어들고 어쭙잖은 똥가리 하나에 미주알고주알 하며 된 소리 안 된 소리 중얼거림도 님들이 좋았기에 그러하였음을 아시려는지... 비록 형체도 없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이곳도 여느 사람살이와 다름없는 분명 세상의 한 부분임에 만나는 기쁨만큼 이별의 아픔도 있었고 오해와 갈등과 불평과 불만도 있었으니 그런 것들이 후회스럽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얍니까? 사발에 담긴 물도 흔들리는데 바람막이도 없고 지붕도 없는 허허벌판에 어찌 매일이 청천이길 바라며 어찌 온실속의 무풍이길 바라겠습니까. 간혹 흐리고 더러 바람도 일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닥불은 이제 우럭우럭 타오르는 화톳불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어디 도우미만의 수고였겠습니까? 통사공은 주인이 없습니다. 손잡이가 부러지면 쓸모없이 흩어지는 부챗살 같은 그런 관계가 아니라 거미줄처럼 설사 한곳이 찢어지더라도 남은 줄로 지탱하며 다시 이어가는 그런 관계, 그것이 통사공의 자랑이며 힘이기에 앞으로도 나아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불쏘시개는 불쏘시개로서 만족하고 이제 이 화톳불은 불쏘시개의 것이 아닌 불씨 꺼뜨리지 않고 이어온 님들의 것이기에 따뜻하게 지켜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겠지요. 함께 지켜주이소.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주이소. 설령 작품이 좀 모자라면 어떻습니까? 문법이 좀 틀렸으면 또 어떻습니까? 늘 그러하셨듯이 다독이고 배려하며 나무냄새 못지않게 사람냄새도 가득한 따뜻한 곳으로 가꾸어 주시기 바래봅니다. 통나무 사랑과 공예는 우리 모두의 쉼터이기 때문입니다. 겨우 맥주 몇 잔에 또 이렇게 주절거리네요. 조금은 싸한 바람 속에 밤이 깊었습니다. 님들과의 인연이 새삼 고마운 밤. 꿈속에서 만나 벙개 함 하입시더. 제가 쏘겠습니다...^_^ -병술년 정월 스무 아흐레 자정을 넘기고...강바람-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