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술 고픈 밤 강 바람 2006. 10. 23. 18:13 화분에 물 준뒤 꼭 주고 받는 말이 있다."하는김에 좀 쓸어내지...""나놔라, 한꺼번에 버리면 되지..."가을 낙엽은 물론이고동백이 묵은 잎을 털어내는 이즈음에도아내와 주고받는 언쟁 아닌 언쟁인데영산홍까지 지면서 베란다를 어지럽히니 아내는 지저분하다고 타박이고나는 그건 그것대로 운치 아니냐는 속셈으로부러 모른 척 지나치는 건데사실은 그것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고곱다고 이리보고 저리보며 즐기다가떨어졌다고 홀랑 쓸어내기가 뭣해서 며칠씩 묵히기도 하는 건데...때 되어 가게 되면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내가 잊혀진다는 게 서러울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알던 모든 사람들로부터, 내 목숨만큼이나 사랑했던 가족들로부터도 잊혀질 거라는 어처구니 없는 서러움의 시절도 그러구러 세월 흐른 지금은 잊혀짐에 대한 서러움만큼이나 잊고 살았음에 대한 미안함이 서러움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떠오른다.꿈에서라도 잊을 수 없다던, 없으면 못 살 것 같았던 사람까지 잊고 살았듯이 그들이 나를 잊는다 해서 서러울 일 뭐겠는가 싶으니 모난 이기심이 세월이라는 정에 맞아 참 많이도 무디어졌음을 느끼고 그리 될 수 있도록 한 공을 따진다면그 일등공신에서 통사공을 빼놓을 수 없다. 며칠 전 반쪽이님 공방에서이런저런 담소 중에 어느 회원의 말이 화제에 올랐다. 2년이 되도록 눈팅만 하던 분인데경주번개에 다녀온 후 어떤 모임에서 한 말은"이제는 회원들의 닉을 보면 얼굴이 떠올라요" 였단다.그자리에 있던 회원들 모두가 공감하며그게 통방병 초기증상이라고 즐겁게 웃었으니비단 그분만의 느낌이 아닌 모두의 마음이었고그런 일들이 내게도자연스러운 일상이 된지 어언 삼 년째.전에 없이 사물이나 사건에서 연상되는 이름들.길가에서 만난 작은 꽃에서도 어떤 꽃은 거시기의 닉이 겹쳐지고또 어떤 꽃은 머시기의 모습이 떠오른다.앞선 사람의 머리카락이 길면 긴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생각나는 닉이 있고무심코 올려다 본 간판의 글자에서도 아무개가 떠오르고또 어떤 간판에선 누군가가 생각난다.일상에서 흔하게 보아왔던 소소한 것들도이름이나 모양 때문에 생각나는 닉이 있고예전엔 없던 얼굴이 겹쳐지기도 하니만난 적이 있든 없든작은 연관성 하나만으로도 스치는 닉이 있고가본 적 없지만 내 아는 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다 듣는 작은 마을의 이름도 반가운 고향 같으니그것은멀리 있는 핏줄에 대한 그리움이나곁에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는 다른또 다른 의미의 애틋함이고더러 보고 싶지만 달려가지 못해도 좋고때로 그립지만 그립다 말하지 않아도 좋다.그냥 그렇게 보고픔을 품고그냥 그렇게 그리움을 안고감춰둔 보석인양 그것들을 아껴 즐길 뿐.그냥 그렇다.나무 토막 하나 들고그가 가족이든 아니든주고 싶은 얼굴을 떠올리고그 얼굴에 지어질 웃음을 그려보고이건 누구에게 저건 또 누구에게...그런 자잘한 마음들이 왜 그토록 즐겁고 신나는지 모르겠지만,그러고 있으면 그냥 편하고 즐거우니...그런가보다.기억도 망각도 그리 하려해서 하는 게 아닌그냥 그렇게 떠오르는 그런 것이고그리움이든 추억이든 내가 잊지 못하고 있는 기억들조차 그를 위해 잊지 못하기보다 내 필요에 의한 기억이고 나를 중심으로 하는 추억이며새삼 인연에 연연함은 그들을 사랑함에 앞서누구에게도 잊혀지고 싶지 않은 내 욕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르겠다.잊혀짐에 대한 두려움에서도 자유롭지 못하고 잊어야하는 아픔이 명치에 걸린 돌덩이만큼 삭이기 힘들지만 그러기에 더욱 더사랑할일 있으면 사랑하고어울릴 일 있으면 어울리고그리우면 그리워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말하며 사련다.그리움도 내 살아있음이고용서함도 내 살아있음이고 사랑함도 내 살아있음이려니... 이 밤에도 내 인연들과 그렇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에~고~~ 와 술이 고픈가 모르겠네...ㅡ,.ㅡ-06.06.01 강바람-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