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체포작전
시절은 초겨울인데
벌써 왔어야 할 녀석이 주춤거리며 오질 않습니다.
기다리다 지쳐서
볕 좋은 월요일 오후에
반의반쪽님과 녀석들 체포 작전을 펼쳤습니다.
시내를 벗어나니 녀석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데
별로 멀지도 않은 곳에 있으면서 사람 애타게 한 녀석들이라
마음 같아선 바로 체포해서 곤장이라도 치련만
한 둘은 성에 안 차서 아예 더 멀리 나갔지요.
녀석들이 떼로 몰려 있을 만한 곳을 물색해서 일망타진 할려구요.
반의반쪽님 탱크를 타고
양산에서 어곡을 지나 신불산을 넘는데
산에 들어서니 울긋불긋 녀석들이 지천으로 깔렸데요.
여기 있는 녀석들만해도 제법 되는데 또 욕심이 나서
아예 산을 넘고 물길따라 배내골로 향했습니다.
물론 가는 도중에 거시기한 머시기들이
산꼭대기에 골픈가 뭔가를 칠끼라꼬
온산을 까뒤집어 놓은 모양에 속이 좀 뒤집히긴 했지만
뭐 우야겠는교, 혀만 끌끌 찰 뿐...
밀양댐 상류인 배내골 초입 다리 위에서 보니
오랜 가믐으로 계곡은 실개천이 돼있고
실낱 같은 작은 물줄기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비가 좀 오긴 와얄긴데...
가는 세월이 아쉬운 듯
꽃과 낙엽이 갈바람에 팔랑거리고 있는데
차마 체포하지 못하고 확인만 했습니다.
긴 여정을 마친 낙엽은 굳이 내가 체포하지 않아도
그렇게 그렇게 그리 될 것을...
여긴 제법 그럴듯한 녀석들이 떼로 몰려 있었습니다.
물과 돌과 소나무와 어울려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볼만합니다.
녀석들 잡으러 나섰긴 했지만
멀뚱이 바라 보다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산,돌, 물, 바람...
그리고 단장한 나무들...
맑디 맑은 물과
아직 옷 갈아 입지 못한 게으른 녀석 까지
눈으로 한번 보고
마음으로 또 한번 보고...
곱습니다.
모두가 곱더군요.
자연의 섭리따라
때되면 단장하고 가는 모습들이
인간사와 뭐 다르랴 싶은...
잠시 마음 머물렀던 곳을 뒤로하고
탱크를 전진시켰습니다.
물론 아직 한 녀석도 체포하지 못햇습니다.
짧은 해는 산그림자를 드리우는데
출동 임무도 잊은 채 길가에 탱크를 세웠습니다.
손두부/ 막걸리/ 파전....
참새가(반쪽님)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습니까?
무작정 주차 했습니다.
바로 길건너에 그럴듯한 곳이 있었지만
늙수그레한 아주머니의 손맛을 기대하며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저기 가운데 자리에 앉았는데
장작난로가 싸늘한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습니다.
따뜻했습니다.
길건너 통나무집에서는
이장희의 노래 "그건 너"가 유혹합니다만
이맛에 비하겠습니까?
음악이야 뚫린 귀로 들으면 되는 거고...
언양 미나리(한재미나리보단 향이 적고 가늘다)도 묵고
두부도 묵고
막걸리(저기 보이는 주전자로 반만...) 마시고
무엇보다도 김치가 일품이었습니다.
거기에
갓 잡은 향어회 까지...
상세한 맛은 생략합니다.
염장이라꼬 딴지 걸까봐...ㅎ
암튼 녀석들 체포작전의 본분도 잊고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가 밝게 비치고
미리 먹어 둔 막걸리가 깰 때쯤
자리를 털고 일어 났습니다.
어느새 숲은 보이지 않고
먼 산은 거뭇한 윤곽만 남긴 채 어둠에 싸였습니다.
지천으로 널린 녀석들을
모두 체포하여 가슴에 가득 싣고
살금살금 밤길을 내려 왔습니다.
비스켓 하나 묵은 코끼리 처럼
막걸리 한잔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날아가 버린 반쪽님과 달리
저만 신이나서 흥얼흥얼 콧노래 부르며 내려왔습니다.
오는 길에 다요에 들러
다섯 가진가.. 여섯 가진가...
암튼 술 깨는 데 좋다는 약차를
햇볕에 내다말린 달짝지근한 감껍질을 곁들여 마시고
마무리도 깔끔하게 돌아왔습니다.
그냥 맨손으로 돌아와서
녀석들을 일망타진해서 모두 제 가슴에 넣고 왔다면
상부의 높으신 님들이 믿어 주시겠습니까?
택도 없겠지요.
그래서 부득불 두 녀석을 직접 데리고 왔습니다.
이렇게 가을체포작전은 성공리에 끝나고
저의 가을병도 함께 치유 되었습니다....
탱크 몰고 다닌다고
막걸리도 제대로 몬 묵은 반쪽님,
다음엔 내가 탱크 몰테니 실컷 드이소...^_^
-06.11.15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