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할배랑 아이랑

어제는...

강 바람 2008. 8. 13. 23:40

 

06:00

잠결에 끙끙대는 소리를 들었다.

일돌이 녀석이 저혼자 엎어져서는

버티다 버티다 힘들때 내지르는 소리다.

일어날까 말까...

제 엄마가 일어나겠지...

아니면, 주방에 있는 할매가 가든지...

그렇게 게으런 요행을 바랐지만 끙끙 소리는 울음 직전으로 치닫고 있었다.

에구구구....우짜노...들었으니 나가야지...

밤 새도록 선잠으로 지샌 딸내미는 

우유병을 든 채, 이돌이 배에 팔 걸치고 잠들어 있고

일돌이는 고개 들 힘도 없는 듯 바닥에 얼굴 묻고 낑낑거리고 있는데

머리 밑에는 침이 고여 흥건하다. 

이돌이 배에서 딸내미 팔을 걷어 내고 

일돌이 바로 뉘고 토닥이며 보초를 서다보니

 

06:40

둘다 깼다.

깨면 밥부터 챙기는 게 애기들이다.

칭얼칭얼...

왼손은 이돌이...오른손은 일돌이...

그렇게 쌍권총 차고 보초는 계속 된다.

 

08:30

후다닥 후다닥

교대로 아침을 먹는다. 

가급적이면 늦게 먹을라꼬 한다.

그래야 여유있게 먹을 수 있기에...

 

09:30

연우 유치원 갈 시간이다.

고양이 세수하듯 눈꼽만 떼고는 집을 나선다.

빤히 보이는 유치원...

방학 전에는 찻길만 건네 주면 혼자 쫄래쫄래 갔는데

오늘은 개학 첫날이라 같이 가기로 했다.

화단구경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유치원에 인계하고

시원한 그늘에 서서 담배 한대 피우고 들어간다.

오늘 부터는 한 녀석이 빠지니 그나마 좀 수월할 듯...

 

10:00

거실은 다시 놀이터가 된다.

유모차 두대는 바쁘게 움직이고

한 옆에는 보행기까지 대기 상태다.

한 사람은 빨래

또 한 사람은 설거지...

할배는 두대의 유모차를 운동기구 삼아 팔운동을 시작한다.

왼쪽 당기고 오른쪽 밀고...오른쪽 당기고 왼쪽 밀고...

일돌이 까꿍...이돌이 까꿍...

빙긋 웃는 일돌이, 방긋 웃는 이돌이...

이게 녀석들 봐주는 품삯이다.

잘 웃든 녀석들이 침묵을 지킨다.

먹고 잘 시간이 됐다는 신호다.

할매가 빨래를 널고 들어온다.

화장실 핑계로 잽싸게 한 녀석을 인계한다.

나머지 한 녀석은 보행기에 태우고...

 

10:30

다시 칭얼칭얼...

우유병을 입에 물렸더니 쪽쪽 빨며 쌔근쌔근 잠이 든다.

이돌이 녀석은  드르릉 드르릉 코까지 골며...

세수하는 사람...빨래 개는 사람...

백일 전에는 적어도 한 시간은 잤는데

요즘은 길어야 삼십분이고 보통은 십오분에서 이십분이다.

그렇다고 깊이 잠드는 것도 아니고 자면서도 계속 뒤척이니

눈은 티비에 있어도 손으로는 유모차를 살랑살랑...

 

다시 깨고 얼르고 달래고 놀다가 먹고 자고....

 

13:00

공방엘 가렸더니

딸내미가 아이들 놀이기구를 조립하고 있었다.

간단한 작업이 아닌듯 싶어 끼어들었는데

 

14:30

한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밖은 푹푹 찌니

공방은 포기하고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연우 마중하고...

연우 샌들 수선을 시작한다.

샌들 장식 리본이 떨어져 너덜 거리는데

내일 내일 미루기를 며칠 째...

연우는 할배가 맥가이버 쯤 되는 줄 안다.

본드로 붙이면 될 줄 알았는데 실로 꿰매야 했다.

반짇고리에서 실과 바늘을 챙기고 창틀에 걸터 앉아 눈 찌뿌리며 꿰맨다.

 

15:00

길게 누웠다.

참았던 잠이 일시에 덮치는데 병원 다녀 오겠단 말이 들린다.

일돌이 녀석이 며칠 째 자꾸 토하더니 아마 그 일로 그러는가 보다.

뻗히는 걱정을 날씨 때문일거라며 눌러 버린다.

 

16:30

애들 깔깔 웃는 소리에 잠이 깼더니

할매는 쇼파에 기대어 졸고 있다.

병원 다녀온 딸내미에게 물었더니 소화불량이란다.

우유 량을 줄여야 겠는데 일돌이 녀석이 동의해 줄지...

할매캉 낮잠 교대 하고

얼르고 달래고 밀고 당기고 먹이고 재우고...

그 와중에도 통방 소식이 궁금하니

한손에 이돌이 안은 채 잠시 들여다 본다.

그렇게 하루 해는 저물고...

 

21:00

드디어 두 녀석이 잠 들었다.

저녁무렵부터 시작한 천둥번개가 계속되고 

연우도 무서워서 못 자겠다며 할배를 쳐다보고

일돌이는 꿈적 않는데 이돌이는 깜짝깜짝 놀란다.

녀석들 가운데에 벌렁 누워 한 쪽에 연우 손, 또 한 쪽엔 이돌이 손...

조그만 손들을 꼬옥 감싸 쥐었더니 녀석들 금새 잠든다.

고개 젖혀 올려다 본 티비에서는 

덴마크를 극적으로 누른 핸드볼팀이 길길이 환호하고 있었다.

세찬 빗소리가 시원하다.

 

 

  

 

타자소리 들릴세라 키보드를 살살 누르다가 

살짝 돌아보니

네 식구가 나란히 잠들어있네요.

쉿! 조용...

편한밤들 되이소~~^_^

 

-08.08.13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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