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266

Holiday

분주히 오가던 차들은 어둠에 눌려 보이지 않고 좌회전 신호를 재촉하는 노란 깜빡이들만이 지금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급하게 좌회전 신호를 조르다가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시위 떠난 화살처럼 숨 가쁘게 삼거리를 휘돌아간다. 어디로... 왜...라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다가도 미끌미끌한 그릇이 고무장갑에서 빠져나가려는 통에 그것 움켜쥔 손에 힘이 실리면서 의미 없던 궁금증도 스르르 사라지고 외발로 선 새처럼 왼발 엄지를 오른발 등에 세워 다리 쉼을 한다. 눈은 삼거리의 신호등에 멈추고 손은 설거지에 바쁘고 생각은 홍길동 분신처럼 흩어져 헤매는데 딸내미가 사준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귀에 익은 Scorpions의 Holiday가 흘러나와 축 처진 할배의 어깨를 부추기고 있다...^^ -2021.01.0..

꽃창포

그의 환한 웃음은 딱 그해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웃음마저 오랜 간 것도 아니었으니 한 이틀? 잘 하면 사흘? 잠깐 스치고 비틀거리며 떠나고는 소식 없었다. 그로부터 한두 해 더 기다렸지만 그는 다시 오지 않았고 나 또한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느닷없이 찾아왔다. 언제 만났었는지 몇 해나 지났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차에 반갑기도 하고 잊고 산 게 미안키도 하고... 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그가 웃을 때만 마음을 줬으니 根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얄팍한 내 인정은 뿌리가 아닌 꽃이 그의 본질인 줄 알았다. 하기야, 꽃뿐이었을까? 또 다른 그... 또, 또 다른 그, 그, 그들... 불쑥 찾아온 꽃창포(맞나?) 한 송이에 가물가물한 기억 따라 7년 전 4월 청주 어디쯤에 멈추어 혼자 웃는다. 하루에 하나씩 ..

산들바람은 부드럽게

-영화 쇼생크 탈출- "피가로의 결혼" 산들바람은 부드럽게...모짜르트 채널 돌리다가 만나면 또 보게 되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고 쇼파에 삐딱하게 누웠던 나를 똑바로 고쳐 앉게 만든 게 이 장면이었다. 누구의 작품인지 누가 불렀는지 무슨 내용인지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냥 절묘한 타이밍에 절묘한 선곡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무서운 벌칙을 모르지 않을 텐데 이토록 느긋할 수 있음은 어떤 힘이었을까? 교도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갇힌 자는 힘없는 을이 되고 가둔 자는 악랄한 갑이 되어 또 다른 악을 생산하는 그 속에서 통제에 길들여진 늙은 새는 새장 밖의 하늘을 두려워하는데 어느 하루 좋은날이 없을 일상 중에 딱딱하고 살벌한 명령전달의 수단이었던 스피커에서 차분하게 내려앉은 여가수의 감미로운 노래가 울려 퍼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