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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넝쿨이 모든 걸 덮었다. 팔도강산 제집 아닌 곳 없더니 거침없던 기세는 바다를 앞두고 엉거주춤 섰다. 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데 안 가는 곳도 없고 못 가는 데도 없으니 세간의 눈총이 따갑지 않은가. 너무 극성이니 편들 수도 없다. 궁핍하던 시절 허기 달래던 고마움을 추억하지만 이제 그 맛 아는 입들도 그리 많지 않으니 알싸함 뒤에 감도는 달짝지근한 그 맛을 누가 전해 줄까...^^ 2022.09.12 부안 고사포에서

카테고리 없음 2022.09.27

Holiday

분주히 오가던 차들은 어둠에 눌려 보이지 않고 좌회전 신호를 재촉하는 노란 깜빡이들만이 지금 나가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조급하게 좌회전 신호를 조르다가 신호가 들어오자마자 시위 떠난 화살처럼 숨 가쁘게 삼거리를 휘돌아간다. 어디로... 왜...라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다가도 미끌미끌한 그릇이 고무장갑에서 빠져나가려는 통에 그것 움켜쥔 손에 힘이 실리면서 의미 없던 궁금증도 스르르 사라지고 외발로 선 새처럼 왼발 엄지를 오른발 등에 세워 다리 쉼을 한다. 눈은 삼거리의 신호등에 멈추고 손은 설거지에 바쁘고 생각은 홍길동 분신처럼 흩어져 헤매는데 딸내미가 사준 블루투스 스피커에선 귀에 익은 Scorpions의 Holiday가 흘러나와 축 처진 할배의 어깨를 부추기고 있다...^^ -20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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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ends of the Fall (가을의 전설 )OST The Ludlows - James Horner 안녕들 하세요? ‘밥 먹는 게 일이다.’ 이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네요. 앞으로의 한 달은 또 어떻게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고요. 서툰 할매의 외손잡이도 균형이 잡혀가기에 “많이 늘었네?” 했더니 “묵고 살아야하니까”라며 씩 웃습니다. 하루 세끼 밥 먹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그것을 위해 어떤 수고를 하는지 알게 됐으니 이 상황이 제자리로 돌아가더라도 예전처럼 외면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쌀값이 얼만지, 김치찌개용 돼지고기는 어떤 건지, 생미역은 어떻게 무치는지, 콩나물이 끓고 있을 때 뚜껑을 열면 안 되는 이유도 알고 김장양념에 무엇무엇이 들어가는지도 알고 ..

카테고리 없음 2020.12.07

그냥...

창밖을 내다보던 아내가 처녀 땐 비오는 걸 좋아했는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리기에 나는 지금도 좋아한다고 했더니 영감은 아직도 청춘인데 나만 ‘늙었나보네’라며 웃습니다. 7남매 중 장녀로 나서 가사와 농사일로 동동거리면서 유일한 휴식이었을 비가 좋지 않을 수 없었음을 짐작하니 그 시절 비를 좋아했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님을 알기에 괜히 또 거시기한 마음이었습니다. 나 또한 그와 비슷한 이유로 비를 좋아했을지도 모를 일인데 비 좋아하는 게 청춘이라니 이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라 그렇게 연결 지어지는 그 둘의 관계가 궁금했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생각이 들어서 굳이 그 이유는 묻지 않았네요. 예년에 비해서 길어진 장마와 뒤이어 들이닥친 연속적인 폭우로 세상이 온통 물 폭탄 맞은 듯하고 그 후..

바람소리 2020.09.18

꽃창포

그의 환한 웃음은 딱 그해뿐이었다. 그렇다고 그 웃음마저 오랜 간 것도 아니었으니 한 이틀? 잘 하면 사흘? 잠깐 스치고 비틀거리며 떠나고는 소식 없었다. 그로부터 한두 해 더 기다렸지만 그는 다시 오지 않았고 나 또한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느닷없이 찾아왔다. 언제 만났었는지 몇 해나 지났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차에 반갑기도 하고 잊고 산 게 미안키도 하고... 늘 같은 자리에 있어도 그가 웃을 때만 마음을 줬으니 根本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얄팍한 내 인정은 뿌리가 아닌 꽃이 그의 본질인 줄 알았다. 하기야, 꽃뿐이었을까? 또 다른 그... 또, 또 다른 그, 그, 그들... 불쑥 찾아온 꽃창포(맞나?) 한 송이에 가물가물한 기억 따라 7년 전 4월 청주 어디쯤에 멈추어 혼자 웃는다. 하루에 하나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