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할배랑 아이랑

누나의 몫

강 바람 2012. 2. 17. 22:46

 할아버지 시계

제 손녀 연우랍니다.

제게 보낸 메시지인데

녀석이 이런 문장을 구사할 나이는 아니지만

이런 걸 선택해서 보낸다는 게 얼마나 기특합니까?

이 녀석에게서 이런 메시지 받을 날이 이토록 빨리 올 줄은 몰랐거든요. 

 

 

 

제 생일상입니다.

며칠 남았지만 녀석들 만남 김에 미리 하기로 했더니

녀석들이 더 신났습니다.

케이크에 촛불 켜고

생일축가도 불러주고

재롱도 떨고

할배대신 촛불도 꺼 주고...

 

 

쌍둥이 녀석들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할아버지 선물이라고 내놓고

연우는 그림 그릴 때 쓰라고 연필을 선물로 내놨습니다.

그렇게 생일상을 받았습니다.

 

 

 

쌍둥이 녀석들도 특별한 존재지만 

연우는 제게 '할아버지'란 호칭을 처음 안겨줬으니

일테면 첫정인 셈이지요.

그런 녀석이 벌써 열 살이나 되어 

다섯 살 아래 동생들 챙기는 게 어느 누나 못잖아서

제가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녀석의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책상에 엎드려 있기에 잠이 들었나 싶어 깨웠더니

고개를 돌리고는 꿈쩍을 않는 겁니다.

무슨 일 있느냐.

엄마에게 혼났느냐며 얼렀더니

뺨은 여전히 책상에 괴고 돌아보는데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더군요.

예삿일이 아니다 싶어 녀석의 얼굴 앞에 내 귀를 갖다 대며

내게만 살짝 말해보라 했더니 한 대 딱! 때려 주고 싶답니다.

짐작되는 게 있었습니다.

다섯 살배기  두 녀석이 얼마나 떼쟁이들인지 저도 알거든요.

이어서 또 한마디 하는데

나이가 한 살 차이였으면 좋겠답니다.

너무 어리니 싸울 수도 없고 때릴 수도 없다는 뜻인가 본데

속이 참 짠하데요.

이 녀석도 다섯 살 무렵엔 지금의 쌍둥이 못잖았는데

그걸 참고 지내려니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싶어서

할아버지를 쌍둥이라 생각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며 할배 등짝을 내밀었더니

메모지 한 장을 쭉 찢어서 연필로 와락와락 긋고는

그 종이를 구깃구깃해서 쓰레기통에 내 던지기에

살포시 안고 토닥토닥 두드려 줬더니 히~ 웃으며 '괜찮아요.'랍니다.

다시 달랬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 뭘 알겠느냐고...

연우도 다섯 살 때는 그랬다고...

밥 먹을 때

할아버지가 연우 보다 빨리 먹으면

너는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었다고 했더니 샐쭉 웃더군요.

앞으로 십년만 지나면 연우는 스무 살 대학생이 될 거고

쌍둥이들은 열다섯 살 중학생이 될 텐데

그때쯤이면 일돌이와 이돌이 양쪽에 세우고 걸어가면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겠느냐고...

지금 잘 못한 것 일일이 적어 놨다가 그때 다 받아 내라고...

그제야 히히~~ 웃는 녀석을 다시 안아 줬습니다.

그리고는 고맙다고 했지요.

많이 사랑한다고도 했습니다.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와 같은 마음일거라고 했고요.   

그렇게 작은 바람은 지나갔지만 

녀석의 조그만 가슴에 그런 눈물이 있을 줄은 짐작도 못했으니

그것이 또 아리도록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달래 놓고 나왔는데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축하메시지를 보냈군요.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할배 마음 알아 준 것 같아서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연우 많이많이 사랑한다고 답해 줬습니다.

돌아오는 날 작별 인사를 하며 팔을 벌렸더니  

늘 머뭇거리던 녀석이 깡충 매달리며 꼭 껴안습니다.

녀석의 마음을 가슴으로 전해 받고 돌아 왔네요.

 

오늘 저녁

아내가 멍게와 생미역을 사와서

소주 한 잔 곁들여 맛있게 먹었더니 알딸딸하네요.

그 덕으로 이렇게 강바람이 '손주바보'임을 또 들어내고 말았고요.

다시 추워진 날씨만

아무리 추운들 오는 봄 돌아가겠습니까?

베란다의 애기사과에 새눈이 텄으니 곧 봄이 오겠지요?...^^

 

-12.02.17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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