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쌩 내달리는 차들로
매연과 소음과 바람이 장난 아닌데
흙도 없고 틈도 없는
고가도로 메마른 시멘트 바닥 구석에
제비꽃이 무더기무더기 피었습니다.
작년부터였는지 그 전부터였는지
아니면 그보다 더 먼 언제부터였던지 알 수 없지만
척박한 틈바구니에
꽃 피운 게 대견해서 한 컷 찍었네요.
강변으로 통하는 유일한 횡단보도라서
매일 다니는 그 길이지만
이 녀석들 피기 전에는 눈길 한번 줄 일이 없었더니
보랏빛 작은 생들이 무심한 눈길을 사로잡았지요.
어떻게 뿌리내렸는지 헤집어 보고 싶었지만
바뀐 신호등 따라 급히 돌아섰었습니다.
오늘 산책길에
작정하고 녀석들 앞에 쪼그려 앉았습니다.
작은 돌멩이 하나 주워
녀석들 자리 밑을 살살 긁어보니
바람에 실려 온 먼지가 쌓였는데
그 높이가 고작 1센티 정도네요.
태어나면서
딛고 설 흙 한줌 보장할 수 없는 생명.
한 뼘 밖 포실한 흙더미에 미치지 못했음을 원망할까요?
한 뼘 안 차바퀴에 뭉개지지 않은 걸 고마워할까요?
바람이 조금만 더 불었더라면...
바람이 조금만 덜 불었더라면...
부질없는 바람 탓을 할까요?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흙먼지라도 쌓여있으니,
발 뻗을 틈이라도 있으니,
이슬이라도 내려주니 그게 어딥니까.
뿌리가 어떻게 내렸는지 궁금해서
더 헤집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모르긴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보도블록 사이의 좁은 틈 말고
발 뻗을 곳이 또 있었겠습니까?
별 총총한 밤이면
녀석들은 깊은 잠에 들 테지요.
자동차 굉음이 천둥 같아도
새벽이슬 내릴 때까지 깊이깊이 잠이 들겠지요.
무릎 짚으며 일어서는데
등 뒤에 낯선 행인이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뭐 대단한 일인가 싶어 기웃거렸겠지만
돌아서며 날리는 할배의 민망한 썩소에 옅은 미소로 대꾸해 주네요.
달리던 자동차들이 일제히 멈춘 사이
파르르 떨던 녀석들은 미동도 없고
그렇게 잠시의 평온이 깃든 그 곳에
초록 신호등에 쫓긴 할배의 걸음만 바빴습니다.
소생과 잉태의 시간...봄입니다...^^
-2018.04.01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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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 조동진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
내가 다시 너를 만났을때
너는 많이 야위었고
이마엔 땀방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이 나와
내가 마지막 너를 보았을때
너는 아주 평화롭고
창너머 먼 눈길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