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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창가에

강 바람 2006. 8. 21. 14:17


“씻고 밥 묵읍시다.”
“기냥 묵을란다.”
“손이라도 씻고 오이소...”
이거 무신 다 늙어서 어리광도 아니고...
몸이 먼저 봄을 느꼈음인지 나른하고 흐물흐물한데 
아이들이 온다하니 나가긴 틀렸고
에라!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컷 게을러보자 싶어
뒹굴 거리며 하루를 지내보니
하고 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 해도 되는 자유가 참 편하데요.
화분에 물주고 나서 이곳저곳 둘러보니
애기사과는 벌써 새순을 내밀고

겨우내 잠자던 나리가 싹을 틔웠습니다.

한겨울에 불쑥 솟았던 이 녀석은
다행히 별 탈 없이 엄동을 넘겼는데

추위에도 끝까지 버티다 간 
제비꽃의 안부가 몹시 궁금해지네요.

동백은 가지마다 붉고
할배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아이의 웃음이 
그 꽃 보다 더 고운데
녀석이 
선홍빛 기다림을 알겠는가.

입술에 머금은 그리움을 알겠는가.

아니면
그 생 다하고 돌아가면서
남기고 갈 게 없는 서러운 그 마음을 알겠는가?
먼 훗날 
녀석도 나처럼
지쳐 떨어진 검붉은 꽃잎에서 
가느다란 흐느낌을 들을 테지요.
환청처럼...

녹녹해진 잔가지에 
햇볕 머금은 물방울이 보석처럼 반짝이네요.
밤공기는 아직 냉랭한데
성급한 마음이 먼저 앞질러 가니
봄은 남쪽에서 오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기다림으로부터 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꿈 꾸시고
들에 새싹이 움트면
봄이 온 핑계로 나드리벙개 함 하입시더...^_^
-06.02.20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