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민초(民草)

강 바람 2007. 6. 4. 22:51

깨끗하게 벗겨진 삼나무 껍질입니다.

장승 얼굴을 투각으로 파든지

멋진 글씨를 새겨서 벽걸이로 쓰면 딱 좋겠지만

생각일 뿐, 내 실력에 맞게 화분을 만들었습니다.

예전엔 나도 한 꼼꼼 한다했는데

역설적이게도

칫수와 재단이 중요한 나무를 만난 뒤로

재고 겨누고 따지는 게 더 서툴어졌으니

참말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아침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어제 과수원에서 자생하는 녀석들을 업어 왔는데

밤사이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일찍 깼는지도 모르겠네요.

 

이 녀석은 딸기(뱀딸기? 풀딸기?)인데

번식력이 좋은 것 같아서 업어왔습니다.

줄기가 땅에 닿으면 그 닿은 자리에서 뿌리가 생기고

또 줄기가 크고 뻗다가 땅에 닿으면 뿌리가 생기고...

이런 생명력이라면 키우는데 별 문제 없지 싶어서 데리고 왔는데

글쎄요. 키워봐야 알겠지만...

암튼 삼나무 화분에 옮겨 심고 물을 줬더니

늘어져 있던 허리가 꼿꼿하게 섭니다.

물 먹으면 짙어지는 삼나무의 색깔이

파란 잎과 흰 마사토와 잘 어울려서

그릇과는 또 다른 맛입니다.

 

그리고 또 한 녀석은

무슨 풀인지 이름도 모르는데

지금은 작지만 줄기가 튼실한 걸 보니

이 역시 생명력이 질길 것 같아서 데리고 왔습니다.

지난번 도편수님께 얻어온 반원 형태의 화분이

마땅한 심을거리가 없어 빈 채로 있던 차에

녀석을 거기에 옮겨 심었습니다.

흙을 많이 얹기 위해서 전복 껍질을 세웠구요.

 

이쁘고 귀한 녀석들도 많은데

하필이면 이름도 모르는 풀이냐고 하겠지만

잘나고 화려하고 귀한 녀석은

즐기는 게 아니라  집착하게 됨이 싫고 

화분에 심다 보니 생사에 신경쓰이는 게 부담되니

이런 저런 이유로 흔하고 질긴 녀석들을 키우게되나봅니다.

오늘, 이 녀석들을 보면서 民草란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오늘 화분 두개를 늘였습니다. 

아침 밥 먹고 무심히 녀석들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아내가 묻습니다.

"뭔교?"

"모린다."

"이름은요?"

"모린다."

"꽃은 피는교?"

"모린다...."

"..........."

해놓고 봐도 참 멋대가리 없는 대화라서

그거 눙칠라고 한마디 한다는 게

"아까는 늘어져있었는데 물 주니 생기가 도네..."했더니

"물 먹으면 당연히 생기가 돌지..."하면서 히죽 웃데요.

"???...." 왜 히죽 웃을까 싶어 쳐다보다가 

나도 따라 웃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어느새 짖궂은 할매가 돼 있었네요.

 

아내가 한잔 하자 해서 

맥주 몇잔 마시고 왔는데

어째 영 신경쓰입니다....^_^

 

-07.06.04 강바람-  

'바람소리 > 작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다림  (0) 2007.06.22
오늘 일진이...ㅜ  (0) 2007.06.13
황토염색  (0) 2007.05.14
황토염색  (0) 2007.05.14
껍데기  (0) 2007.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