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한 잔 그 뒤에...

강 바람 2009. 7. 19. 15:24

"한 잔 하시지예?"

한 잔? 

-아홉시니까 열한시에 가더라도 한 잔 쯤은...-

낡은 286계산기의 결과는 오케이로 나온다.

"주라..."

한 잔만 들어가도 삶은 홍게처럼 붉게 익으니

음주측정기 불기 전에 낯빛만 봐도 들통날 체질이고 

그 낯빛이 본색으로 돌아 오는데 두 시간 쯤 걸리므로

계산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메인 안주 나오기도 전에 홀짝 마신다.

빨리 마시면 빨리 깰테니까.

찌릿~ 하다.

 

"한 잔 더 하시지예?"

힐끗 보니 시간은 흘러 아홉시 반...

또 다시 계산기는 돌아가고

-한 잔 뿌라스에 아까보다 삼십분 오바 됐으니 열두시...-

-매인 몸도 아니고 늦다고 뭐라칼 사람도 음꼬...-

또 홀짝 마신다.

열한시도 못돼 술자리는 파하고

터덜터덜 걸어 도착한 공방주차장.

파락호는 酒대리를 부른다.

 

취한 286계산기를 다시 두드린다. 

단속반이 떴을까?

불면 얼마나 나올까?

두 잔이면 내 주량의 60%고

한 시간 반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찜짐하고

겨우 두 잔으로 주대리 부르긴 억울하고...

결론은, 한 시간 기다리기...

 

아내는 또 볼멘소리를 하겠지.

'차 있는 날은 안 묵으면 될긴데...'라고.

얼핏 들으면 천하명답인 듯하지만

고게 어디 말처럼 쉽던강??

그녀가 알 턱이 없지.

편한 자리에 앉으면 나도 몰래 술잔에 손이 가고

남들 건배하는데 빈 잔 들고 손내밀기 멀뚱하고

좋은 마음으로 권하는데 사양하기도 어렵다는 걸...

 

열 한시 반.

파락호도 떠나고 혼자다.

차창을 모두 열고 시디를 튼다.

나나 무스꾸리의 청량한 목소리...

빠르게 흐르는 구름...

파도처럼 출렁이는 나뭇가지...

헛헛한 가슴으로 그것들을 받는다.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뚫고 지나간다.

 

잠깐 기댔는가 싶었는데

자정을 넘기고도 15분이나 더 지났다.

맹맹하다.

'에고~ 이거 머하는 짓이고?'

알콜이 빠져나간 자리엔 실없는 웃음만 남고...^_^

 

-09.07.14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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