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가을 제비꽃

강 바람 2009. 11. 4. 23:17

 

나뭇잎 물들고 그러다 지고

찬서리 내린 뒤 흰 눈 펄펄 내리고...

늘 그렇게 정해진대로 오고 감에

그에 맞춰 준비 하고 그 속에서 봄을 기다렸는데

금년 날씨는 워낙 예측불허인지라

준비 되지 않은 몸은 졸지에 닥친 냉기에 절로 움츠려든다.

거실 깊숙히 스몄던 햇살은 금새 빠져 나가고

이내 서늘한 기운이 방안을 감도니

산머리에 내려 앉은 햇살이 더욱 따뜻해 보인다.

 

 

두툼한 바지 챙겨 입고 터덜터덜 나섰다.

바람이 장난 아니다. 

늘 다니던 등산로엔

꽃은 고사하고 그 흔한 억새조차 볼 수 없으니

버릇처럼 또 옆길로 샜다.

통사공 가입과 함께 생긴 이 버릇 때문에

아내와의 동행은 가뭄에 콩나듯 드문 일이 됐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내가 본 그 작은 것들이

내 이웃들과의 소통을 위한 핑계꺼리임을...

 

 

절개지 옹벽 위를 엉금엉금 기듯이 걷는다.

봄에만 해도 길 흔적이 있었는데

우거진 잡목과 허리를 감도는 잡풀로 길은 끊기고

바람 통할만한 공간엔 어김없이 거미줄이 가득하다.

사람이 길이라 했던가?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인적 끊긴 길은 이미 길이 아니었다.

하긴, 숲이 된 길이 비단 이곳뿐이랴...

 

 

대단한 것 얻자는 것도 아니다.

비집고 든 햇살 한줌과

잠시 쉬어 갈 바위 하나와

화려하지 않아도 좋을

수더분한 꽃 한송이 만나면 족한 것을...

 

 

이 녀석의 내력은 모른다.

어쩌다 이곳까지 왔는지,

그리고 언제 말없이 떠날지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가 지금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거,

그것이 내게는 가장 편안한 휴식이라는거...

 

 

쪼그려 앉아 머리 맞댄 채

'구절초다'

'아니다, 쑥부쟁이다' 하며

우기고 다투어도 좋을 그런 누군가와

히죽~ 웃을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보고 싶은데...

참 보고 싶은데...

그 웃음소리들은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데...

 

 

그렇게 헤집고 다니다가

산비탈 양지녘에 작은 터를 만났다.

아마, 동네 노인들의 소일꺼리 텃밭이지 싶은데

작물의 상태로 보아 자주 오는 건 아닌가 보다. 

자라다 만 듯한 무우.

벌레자리 숭숭한 배추

익다가 말라 버린 고추....

 

 

그 한 켠

돌무더기 아래 핀 제비꽃.

지금이 어느 철인데 제비꽃이라니...

바람이 유독 좋아하는 꽃이라

봄이면 젤 먼저 찾아 나서는 꽃이긴 하지만

가을에 만나는 녀석은 

반가움이기보다는 안쓰러움이다.

어쩌려고, 이 싸늘한 가을에 어쩌려고...

너도 참,

나만큼이나 철없나 보다.

 

 

하지만 우짜겠노,

이왕 나왔으니 사는 날까지 곱게 열심히 살아다오.

그 삶이 내게는 위안이고 기쁨이듯이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즐거움이고 싶은데...글쎄...

 

터덜터덜 돌아 왔다.

모자엔 거미줄이 얼기설기 반짝이고

바짓가랭이는 흙으로 엉망이고

미쳐 털지 못한 씨앗들이

죽기살기로 등짝에 매달려 있다.

아래 위 훑어보는 아내의 눈이 말한다.

'또?? 쯧쯧.....'  

 

-09.11.04 강바람- 

음악 :  Just When I Needed You M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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