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돌부리에 걸린 바람

강 바람 2009. 10. 25. 21:23

 

오후에 나가던 산책을

미적거리다가 놓쳤더니

청소기 돌리던 아내가 채근한다.

'밥할 동안 반이라도 돌고 오면 좋을긴데...'

풀코스가 두시간 쯤 걸리는데 그 반이라도 돌고 오란다.

아마, 청소기 운전에 지장을 줬거나

아니면, 빈둥거림이 눈에 걸렸던가보다.

 

 

 

찌뿌등하던차에 못이기는 척 나섰다. 

가을해는 겨우 한 뼘 쯤 남았는데

그늘을 딛고 선 햇살이

엉금엉금 고가도로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웅크린 그늘과의 대비로 햇살은 더 밝고...

 

 

휘청~~!

강섶을 헤집고 걷다가 된통 걸렸다.

풀섶에 숨은 돌부리에 제대로 걸린거다.

용케, 고꾸라지는 우스운 꼴은 면했지만

서서히 퍼지는 발가락의 통증은 어이하랴?

보는 눈이 있으니 애써 참는데

그들이 지나가는 그 짧은 시간이 어찌그리도 길던지.

에고~ 멀쩡한 길 두고 매번 왜 이러는지...

 

 

 

모퉁이만 돌면 반환점인데 

그냥 버드나무 아래 주저 앉고 말았다.

아파서이기도 하지만

갔다오는 사이에 

노을도 억새도 다 놓칠 것 같은 조바심이었다. 

낙시꾼이 앉았음직한 돌덩이에 앉아

신발 벗어놓고 두 손으로 발가락을 감싸 쥔다.

 

 

우리~하게 퍼져 오는 통증...

'암튼,

이넘의 발톱이 문젠기라.

애초 짧게 깍았더라면 이래 아프진 않을긴데...'

아내는 내 발톱 볼때마다 잔소리다.

'무신 발톱을 한 발이나 기르냐'고...

기르고 싶어 기르냐? 짧게 깍으면 살을 파고드니 그렇지...

 

 

한 발이나 되는 내 발톱을 보면

처음 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이지만

그렇다고 매번

내 발톱이 어쩌구저쩌구 변명할 수도 없으니

그냥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지내 왔지.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어디 그것뿐일까.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살아온 내력이 그것 뿐이겠는가. 

 

 

울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고

아파도 혼자 참아야 하고

그리움조차 남몰래 삭여야하는

고통보다 체면이 우선이었던 허세의 길... 

이래도 저래도 다 의연하리라 했더니

터무니 없는 그 오만과 허세가 이즈음엔 부담스럽다.

아프면 아프다 말하고

서러우면 소리내어 펑펑 울고

외로우면 외롭다 하소연 하고픈데도

그 어줍잖은 허세는 평생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운명처럼...숙명처럼...아님, 고질병처럼....

 

 

시간이 약이런가.

발가락 통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러지고

그자리 그대로 앉아 하늘을 본다.

곱고 아름다운 색. 

하늘도 타고 물도 타고 억새도 탄다.

붉게 솟아 밝게 비추다가 황홀하게 사라지는 해...하루...

더러, 황혼이 서럽다고도 하더라만

서러움이기보다

아쉬움이거나 혹은 후회인지도 모르지. 

 

 

돌에 채인 건가?

아니지, 내가 돌을 찼지.

살면서, 돌만 찼겠는가.

내 발에 차인 그들은 또 얼마나 아팠을지...

아픔이 서러움 되고

서러움이 응어리 됐을 텐데...

강물에 거꾸로 선 억새가 쳐다본다.

신발끈 고쳐매고 일어섰다. 

 

 

앞으로는 채이는 일 없기를...

차는 일은 더더욱 없길 바라지만

늘 다니던 길에서도 채이고 차는데

처음 가보는 남은 그길에서야 오죽하랴 싶다.

다만, 조심조심 갈 수밖에...

 

해질녘

타는 억새의 흔들림도 좋고

용광로 같은 물색도 아름답고

점점이 늘어선 가로등도 편안하니 

사색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좀 그럴듯한 이야기도 있을법 하건만

기껏, 돌뿌리에 채인 발톱 이바구라니...

 

휴일 즐거우셨는지요?

편안한 시간 되이소~...^_^

 

-09.10.25 강바람- 

음악 : The Time Before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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