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가을 나들이

강 바람 2009. 10. 14. 10:05

땅을 고르고 기둥을 세워

지붕 얹어 비 막고

벽 둘러 바람 막으며

힘겨울 그 일을 홀홀 단신 이뤄가는

깡마른 한 사내의 일기를 보며

그렇게 글려 그곳을 찾았고

그 인연으로 드나든지 어언 5년...

 

 

봄이면 봄이라고

여름이면 여름이라고

가을이면 가을이라서 찾고

겨울은 뜨뜻한 구들방을 빙자해 들락거렸으니

그것들이 그냥 핑계였을 뿐임은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일...

 

 

만나봐야 

그는 과묵하고 나는 무뚝뚝하니

그냥 히죽 웃는 걸로 끝이고

서로의 속내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

조곤조곤한 정담도 없지만

그럼에도, 얼핏얼핏 생각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이로만 따지면 스물 넷 아래라

서른 여섯살의 내 큰 아이와 엇비슷하니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어울려볼 꿈이나 꿀 수 있었겠는가.

 

말없는 것도 닮았고

술 한 잔 들어가면 홍게처럼 붉게 타는 것도 닮았고

그는 잘 두드리고 나는 두드리는 것 듣기 좋아하고

또...또...또...

그래서 가끔 궁금하고 보고 싶은 그런 사람...

.

.

 

찻실 열었다기에 갔더니

먼저 오신 손님들로 정신없다.

이곳 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인사를 시킨다.

모두 일면식도 없는 손님들....

어색한 표정으로 마주 앉았기보다는

누렇게 익은 들판이나 보자며 나섰다.

 

 

바람에 누운 억새

길가의 구절초(아직도 구절초와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구분을 못함)

익어가는 벼

낮게 날고있는 잠자리...

올때마다 버릇처럼 휘 돌아 보는 들판의 농로...

 

억새 사이로 힐끗 보이는 빨간 지붕.

그 안에서 웃고 놀던 '통사공 음악의 밤' 정모와

함께했던 그 모습들이 하나, 둘, 셋....아른아른...

혼자 씩 웃으며 다가가니

무리지어 반겨주던 도라지 꽃은 다 어디가고

흰색 하나에 보라색 하나...

달랑, 두송이만 갈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산머리에 해 걸리고

오신 손님들 하나, 둘 돌아갈 즈음

마침 춘피님도 일행과 함께 찾아 왔다.

뻘쭘하던 차에 얼마나 반갑던지...

 

 

 

 

따뜻한 차 한잔 앞에 놓고

이런저런 일상사로 두런두런 하다가

모친께서 손수 끓이신 추어탕으로 허기를 달랜 뒤

 

 

  

그제서야 전시된 그림 감상을 했다.

그와 잘 아는 화가의 작품인데

밝고 소담한 소재들이 마냥 편안하다.

 

 

졸대로 틀을 짜고

한지를 바른 뒤

제철 풀꽃을 꺽어 붙인 조명등이 새로운데

 

 

 

어쩌면 이리도

아리도록 정겨운 모습인지...

 

 

아침에 일어나니

안개 자욱한 들판은 꿈꾸는 듯하고

 

 

햇살이 머문 이슬은 보석 같다. 

 

 

 

뭐 할 일 없냐고 했더니

땔나무 싣고 오는 일 뿐이라는데

아무래도 내 떠난 뒤에 혼자 갈 눈치라서

가자고 자꾸 졸랐다.

 

 

탈탈탈탈....경운기 짐칸에 서서 

상쾌한 아침 바람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어느 누가 와도 이렇게밖에는 찍지 못하리라.

서있는 몸 전체가 달달달 흔들린다.

  

 

2키로미터 남짓 기어서 도착한 곳.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틋한 사연으로 이름 난 영지못 부근에

시에서 숲가꾸기를 하면서 잡목과 작은 소나무를 간벌했는데

작업하시는 분들깨 미리 말씀드리고 싣고 왔다.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는,

그냥 담으면 되는 마음 편한 작업.

십여 분만에 가득 싣고 탈탈탈...되돌아 간다.

 

 

 

 

 

 

 

 

길가에 있는 작은 연못도 구경하고

 

폐교 위기에 놓인

영지초등학교를 기웃거리며

안타까운 마음도 전하며 그렇게 돌아왔다.

 

 

싣고 온 땔감을 빈터에 부려놓고 보니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어제 줄어든 땔감 만큼 채워 놓은 것 같아 흡족하다.

그저 그런 거다.

그렇게 나날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

하잘 것없는 그 마음만 남겨두고

점점 익어가는 가을 들판을 건너 돌아왔다.

 

덜 익은 듯한...

셈에 밝지 못한...그런 사람들...

거시기, 머시기, 아무개....

바람은

당신들이 있어 행복합니다.

고맙습니다....^_^

 

-09.10.13 강바람- 

음악 : The Pea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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