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새집 아이가?"
"뭔 새가 아파트 화단에 집을 지었노?"
"봐라, 저기 새둥지다, 니 첨 보재?"
"아이다, 테레비에서 봤다."
"집이 쪼매한거 보이 참샌갑다"
"새가 있긴 있는기가?"
"@)(*()&%)(!*)%^(*#......"
아파트 조경수 위에 조그만 둥지가 있기에
그것 찍는다고 까치발로 카메라를 겨누고 있는데
아이 손잡고 가던 아주머니들이 참새보다 더 재잘거린다.
어릴적에는 초가지붕의 참새집도 털고
눈 오는 날, 장독대 옆에 광주리 세우고
좁쌀 몇개 흐트려 참새 유인하던 악동 시절도 있었으니
노끈 한쪽 끝 잡고 문틈으로 호시탐탐 노리던
그 긴장감은 어떤 놀이 보다 재미 있었는데
그것이 생명경시니 자연보호니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요즘 도시 아이들에게선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으니
빈 둥지 하나에도 저렇듯 눈을 반짝이는가 보다.
둥지, 참 따뜻한 단어이다.
작은 집 하나 얻자고
얼마나 많은 날개짓을 했을 것이며
얼마나 먼 거리를 오갔을 것이며
여린 핏덩이 키워내느라
또 얼마나 애태우며 동분서주 했겠는가.
그 어미도 그랬고
그 어미의 어미도 그랬고
그리고 그 새끼 또한 그럴 것이니
굳이 생색낼 일 없는
조건없는 사랑과 희생의 흔적이기에
그토록 따뜻하고 포근한 단어였던가본데,
그 아침
회색건물 한 귀퉁이에서
삭풍에 웅크리고 있는 빈 둥지는
외로움을 넘어 안쓰러움이었다.
녀석들에게 둥지는
단지 새끼를 키워내는 은신처일 뿐이고
새끼 떠나면 돌아볼 일 없는 곳이겠지만
생명이 깃들지 않는 빈 둥지,
그 것은 이미 둥지도 아니고 따듯함도 아니다.
붉은 해가 겨울 나뭇가지에 걸리면
참새 떼 후드득 낮게 날다가
어김없이 숲 속 키 낮은 덤불속으로 파고드는데
그곳의 눈(雪)이 주변보다 빨리 녹음만 보더라도
그 작은 생명의 온기가 얼마나 훈훈한지 알리라.
그것이 둥지다.
생명이 깃들기에 둥지인 것이다.
새의 집이든
사람의 집이든
혹은, 흔하고 흔한 카페든...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더 없이 반가웠던 아침.
그들의 관심과 애정과 연민이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둥지를 채움으로해서
빈 둥지에서 또 다른 온기를 느낀 아침이었다.
포근한 둥지에서 편안한 안식을.....^_^
-07.02.01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