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방문·만남

철 없는 사람들

강 바람 2007. 4. 29. 14:45

도편수님의 아더공방을 다녀왔습니다.

선비님이 짜맞춤 기법 한수 배우겠다고 찾아 간거였지만

다 아시다시피 그건 어디까지나 핑계고

도편수님 역시 딱, 한 수로 교육을 마침니다.

"연습하이소!"

간단명료한 답변으로 선비님의 교육은 끝나고

차 한잔으로 진짜 목적을 시작합니다.   

 

하나, 둘 모였는데

정작 묵을 게 없어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다 지칠 즈음 드뎌 먹을 게 도착했습니다.

무엇을 묵었는지는 그냥 사진 한장으로 대신합니다.

날씨도 더운데 겨울에나 쓸 나무 난로를 피웠습니다.

대충 짐작하시리라 믿고 넘어가겠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더니... 

 

도편수님이 후배 도공에게서 얻어온 그릇들을 내놓습니다.

불량으로 나온 녀석들인데 깨버리려는 걸 얻어왔답니다.

그릇으로 보다는 잡초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저도 몇개 얻어왔습니다.

 

 

찻잔 놓을 넓은 쟁반 ? (도판이라고 그러던가?)도 있고

쓸만한 그릇도 있습니다.

왜 불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대로도 이쁘던데...

 

튀지 않는 편한 화분과

역시 요란하지 않은 들꽃이

다기장을 배경으로 섰는데 모두가 편한 모습이고

 

여기도 철쭉, 저기도 철쭉

금년엔 유독 철쭉이 많이 띄지만

 

화려함 보다는 

자잘하고 수더분한 표정들이 더 편하니

그 역시 세월 탓이려니 싶습니다.

 

비슷비슷한 녀석들이 하도 많고

그 녀석이 그 녀석 같은데 암튼 이렇게 꽃을 피우는가 하면

 

그 곁에는 어느새 떠나보내는 녀석도 있네요.

이 모습들 보아 온지 여러해지만

근년 들어 예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녀석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훨훨 떠나보내는 후련한 그 마음을 이제는 조금 알 듯하니

빈 대궁이를 보는 마음도 전에 없이 편합니다.

그 역시 세월 탓이런가...

  

지척에 바다를 두고 살지만

새삼 바다를 보려고 먼길을 갔습니다.

어쩌면 바다를 보려는 게 아니라

바다 보러 가는 그 자체를 즐겼는지도 모르겠네요.

늘 그랬듯이 바다는

오늘도 변함 없이 하얀 포말을 말아 올리고 있는데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저 너머에서
40년 저편의 기억들이 손짓하고 있으니
그 기억들을 찾으려 나선지도 모르겠고요.
조금만 더 가면 고향 바단데...

 

파도의 흔적들
바람의 흔적들
사람의 흔적들을 덮으며
그림자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
바다로, 바다로 향하고

 

 낮달이 하얗게 뜬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송림 사이로 펼쳐진 바다는 그 하늘을 닮았습니다.
참 넓습니다.
하늘도, 바다도...

 

아이는 때 이른 물놀이에 성급하고
어느새 아이를 닮아 가고 있는 저 어른은
모래성을 쌓는 게 아니라
어쩌면 추억을 쌓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아이 어른 되면

모래성과 함께 아버지를 떠올리겠지요.

 

밀려오던 그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파도는 그렇게 물거품만 남기고 밀려갑니다.


뉘엿뉘엿, 산 그림자 짙을 때
화진을 떠나 울산 정자바닷가로 갔습니다.

가깝지 않은 거리였지만 밤길을 달리고 헤매는 건,
그냥 돌아가기엔

큰맘 묵고 나선 길이 아쉬웠던건 아니었을지...
 

 

캄캄한 밤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바다에

오징어잡이 배들의 집어등만이 그곳이 바다임을 알려 주는데
쏴아~ 쏴아~~
바다는 밤에도 쉼 없이 울고 

파도는 가슴을 훑고 밀려갑니다.

쌓인 찌꺼기도 좀 쓸어갔으면 좋으련만...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나들이 하고
밤바다를 배회하다가 자정에 들어왔습니다.
뭐하고 놀았느냐고 묻기에
나무만지고 한잔 하고 그렇게 놀았다고 했습니다.
밤바다 구경하고 왔다면
어른들이 웬 밤바다냐고 웃을까봐 둘러댔습니다.
정말 철없는 짓인 것 같지만
그래도 내일이면 또 나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_^

 

-07.04.29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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