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랬듯이
"시간있습니까?"는 물음에
"시간밖에 없다"는 대답으로 또 길을 나섭니다.
어디로 갈건지는 그렇게 중요 하지도 않고
기껏 정한 길 마저 제대로 다녀와 본 적이 별로 없던 참이라
그냥 그렇게 나서고
나서면서 고른 목적지가 밀양의 제약산 사자평인데
그 평원에 자리 잡은 고사리 분교는
오래 전부터 가 보고 싶었던 곳이어서 내심 기대가 컸습니다.
그 곳을 마음에 담았던 것은
바람 피할 곳조차 마땅 찮은 그 작은 학교 한 귀퉁에 서 보고 싶은,
작고 하찮은 기대가 마음 설레게 했었지요.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은 몇명이나 될까?
내 어릴 때처럼 학교 종은 종일까 산소통일까?
어떤 꽃이 피고 어떤 나무가 서 있을까?
물욕에 대한 기대였다면
걱정과 불안이 가슴 뻑뻑하게 했었겠지만
그런 자잘한 욕심들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니
낮게 엎드려 작은 꽃들을 들여다 보는 것도 어쩌면
내 속을 편케하려는 또 다른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지금은 그 작고 낡은 고사리분교는 아쉽게도 없어졌지만...
언양 석남사를 지나 가지산을 넘고
얼음골 입구를 살짝 지나서 표충사 방향으로 틀었습니다.
가다 보니
길가의 현판에 쓰인 마을 이름이 들은 듯 해서
저곳이 오지마을로서 계곡이 좋다더라 했더니 가 보잡니다.
이거 오늘도 옆길로 새기 시작했습니다.
돌고 돌아가는 길
시멘트 포장 반, 돌길 반의 좁은 길은 차 한대 겨우 지나갈 정도인데
마침 일요일이라 벌초하러 온 차들로 서너바퀴 돌다가 비켜서고
너댓발 가다가 뒤로 빼고를 반복하며 들어가 보니
첩첩 산중의 마을엔 원래의 집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디로 보나 산밖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돌을 돋구어 집을 짓고 비탈을 깍아 씨앗을 뿌리며 삶을 이어 온 그 들은
대 물림 되는 가난을 끊으려
자식을 키워 대처로 보내고 그들은 그곳에서 삶을 마감했을 테니
가난에 씻기고 세월에 삭아
쟁기 끄는 소리마저 끊긴 아쉬움이 크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그네의 감성일 뿐.
절박했을 그네들의 마음을 제가 어이 알겠습니까.
암튼, 지난한 삶의 터전은 휴식의 터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직 가을이라 말할 수 없는 햇살 따가운 산골에서
알게 모르게 가을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전과 달리 정면으로만 찍으려 애 썼으니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요즈음,
나무에 꽂그림 새김질 하는 재미를 알고 부터 생긴 욕심인데
이렇듯 나는
모든 사물을 내 필요에 따라 바로 보기도 하고 모로 보기도 하니
어찌 사는 게 편할 날 있으랴 싶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찾아 헤매는가?
그래서 무엇을 얻었는가?
내 삶은 오늘도 마른 목과 허전한 뱃속을 채우려 안달하니
언제쯤에나 시원스레 목 축이고 빈 곳을 가득 채울 수 있을지....
사진 찍고 막 일어 서려는 반쪽이님을 찍었는데
어디서 많이 본 폼이다 했더니
목을 빼고 물고기를 노리는 새를 닮았습니다.
어쩌면, 호시탐탐 뭔가를 노리는 내 모습이기도 하고요.
재고 따지고 궁리하는 일 없이
꿀을 얻고자 하는 본능에만 충실하는 녀석들의 삶이
얼마나 편할까 싶어 부럽기도 합니다만
그들은 나름으로 걱정과 고민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 중에서 오래 된듯한 민박집으로 향했습니다.
개울가에 돌담을 쌓고 그 위에 얹은 집인데
주차한 곳과 가깝기도 해서이지만
편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이집을 택했으니
내 기준은 어느새
좋고 나쁨 대신 편안과 불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내가 얻으려 안달하는 것도 편함을 위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루에 걸터앉아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양반이 사자평의 고사리분교에 마지막까지 계셨다네요.
안 그래도 사자평엘 가려던 참이라 했더니 가봐야 뭐 볼 것도 없답니다.
단편적인 그때의 이야기와
텅빈 이 골짜기에 정착하기까지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 같았으면
길손도 뜸한 이 골짜기에서 사람 소리 그리워 울지나 않았을지...
잠시 쉬어 가려고 걸터 앉았는데 어느새 점심 시간이라
국수를 배가 볼록하도록 맛있게 먹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작은 沼도 깨끗하고
단풍나무도 많아서 가을의 운치가 제법일 듯하여
나중에 단풍번개라도 한번 할 생각으로 이것 저것 물어 본 뒤
명함 한장씩 받아 넣고 길을 나섰지만
표충사 쪽으로 가려니 길이 막히고 배내골 쪽에서 가려니 그 역시 통제 되어
사자평은 근처에도 못가고 물러 서서는
아쉬운 마음에 천성산 터널과 지율스님으로 유명해진
양산 내원사엘 갔더니 그곳도 시간이 늦어서 되돌아설 수밖에 없었습습니다.
제약과 때 놓침으로 해서 돌아서기도 하고 옆길로 가기도 하는가 봅니다.
털레털레 돌아 와 집 근처에 내리니
해는 어느듯 산 뒤로 숨고
서편 하늘에 노을이 아름답게 물들었습니다.
오늘 나들이도 옆길로 새고 말았네요.
그런가봅니다.
목적지는 그냥 목적지일 뿐인가봅니다.
가다보니 오지도 가고 헛걸음도 하는 그런 길이었지만
때로는 옆길이 목적지 보다 나을 수도 있다는 자위로
가지 못했음에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사자평이야 내일이라도 가 볼 수 있음에
그곳에 대한 욕심은 아직 유효한 상태라 아쉬울 것도 없고요.
정말 아쉬운 것은 되돌아 갈 수 없는 생의 길이 아닌가 싶고
그러기에 하루하루, 걸음 걸음이 소중하리란 생각도 듭니다.
워낙 구불구불 돌아온 길이라
새삼 되 돌아본들 지난 길들이 다 보이지도 않지만
험한 길들은 잊혀진 대신
편한 길은 그리움 되고 아름다운 길은 추억되니
내 필요에 따라 망각도 하고 추억도 하는 단순한 제 기억장치가 고맙기도 하네요.
노을이 참 아름다운 저녁이었습니다.
어쩌면 노을은
어둠이 깃들었기에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네요.
벌써 다섯시네요.
공방에 가서 똥가리랑 놀다가 들어가야 겠습니다.
님들, 오늘도 유익한 하루였기를 바랍니다...^_^
-07.09.18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