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쉰 아홉의 몸살

강 바람 2008. 12. 8. 22:34

 

"와 이래 늦었노?"

"병주네 들려서 침 두대 맞고 오느라고..."

"와?"

"팔굼치가 자꾸 아파서..."

"...................."

 

평생 그 모습으로 남아 있으리라 했더니

그녀도 어느새 쉰 아홉의 마지막 한달을 남기고  

예순이라는 숫자에 주눅 들어

더러 멍한 표정을 비치기기도 하지만 모른 척 시선을 피해준다.

 

낸들 쉰 아홉이 없었겠는가?

어찌

쉰 아홉이 주는 그 야릇한 느낌을 모르랴.

 

딸내집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늦도록 지도를 검색해설랑

거리와 시간을 재보고 메모지에 적어 놓았다가

내려가는 길에 바람 쐬고 가자고 운을 뗐더니

빨리 집에 가잔다. 

 

안다.

시큰둥한 이유는 오직 하나,

집에서 혼자 끼니 때우는 아들녀석이 걸린 다는 것을.

가끔은 모른 척 하며 살아도 될일을...

억지로 끌었다.

천 몇백년 된 고찰이라느니

동백으로 유명한 곳이라느니 그런 건 제켜두고

"내려가는 길인데 잠시 들려가자"

그렇게 꼬드겨 간 곳은 고창 선운사

만산홍엽은 아니었지만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은행잎을 밟으며

혼잡하지 않은 평일의 호젓함으로 들어 갔다.

 

오나가나

사진 찍기에 빠지다 보니 그는 늘 내 앞에 서있다.

어디 오늘 뿐이랴.

살아오면서

빠듯한 월급쟁이의 잔돈을 모아 궁핍한 가사를 꾸려갈때도

그녀는 나보다 더 종종 걸음으로 앞에 있었다. 

 

대웅전 뒷뜰

옹기종기한 돌탑 무더기 곁에 쪼그리고 앉아

돌 몇개를 괴어 놓고 일어서는 그녀가

무엇을 빌었을지 나는 다 안다.

 

어제 빌었던 것과 같을 테고

아마 내일도 같은 기원을 할 것이다.

영감...

새끼들...

꼬맹이 외손주들...

시집도 오기전에 돌아가신 시 어른들까지...

그 많은 기원 속에

그녀를 위한 염원도 있을까? 

 

 

  

돌아온 다음날

몸살로 눕더니 이틀을 끙끙거리고서야 털고 일어났다.

수화기 너머에서

딸내미의 걱정섞인 웅얼거림이 들린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또 그래요?

다음에 오시면 애들 보지 말고 쉬었다 가세요. "

"그래 알았다 곧 털고 일어날테니 너무 걱정 말거라"

딸내민들 알랴.

몸이 부친게 아니라 정신몸살인 것을...

 

 

"앞으로 설거지는 내가 해주께..." 뻔한 소리에

"마, 됐네요..."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

예순이 되면 그래서 또 몸살 날텐데

미리 보약이라도 한 재 지어주고 싶지만

평생 얻어만 먹었지 지어준 적 없으니

참. 무.심.한...

 

 -08.12.08 강바람-

 

Love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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