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 오신다고
할매는 아침부터 청소로 분주하기에
대충 거들어 주고 이른 점심 먹은 뒤
작은 배낭을 꾸려 집을 나왔다.
자주 겪는 일이라
누가 올지 알고
뭘 하며 놀지 뻔히 아는데
이럴 때 눈치껏 알아서 해줘야 가화만사성이다.
갈 곳이 마땅찮아 일단 강변로 나갔다.
저 녀석 뭘 먹긴 먹었을라나?
언제까지 저렇게 꼬나보기만 할 건지...
강변을 벗어나 뒷산으로 향했다.
절기는 분명 가을인데
산색은 여전히 싱그럽고
솔숲을 비집고 든 한낮의 햇살이 따뜻해서
낮은 산인데도 땀이 송송 맺힌다.
겉옷이 거추장스럽지만
감기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지라 꾹 참았다.
저 위에 오르면 촉촉한 몸에 찬 기운이 금방 들이칠 거고
그리되면 아무래도 덧나지 싶어서이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평소엔 잘 가지 않던 길이지만
최대한 길을 늘리고 있는 셈이다.
어쨌건 다섯 시까지는 버텨야겠기에...
길가의 싸리 꽃이 곱다.
홀로 뚝 떨어져 비실비실 피었기에 한 컷...
이 녀석을 학명으로는 뭐라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내 고향 강원도에선 '깜바구'라고 불렀다.
잎은 둥글넓적해서 물 떠먹기 딱 좋게 생겼고
줄기에 가시가 성큼성큼 하고
콩보다 더 작은 열매 속엔 작은 씨앗이 들어있을 뿐
살점이라고는 없는
정말, 뭐 먹을 만한 녀석이 못되는데도
어릴 땐 참 맛나게 따 먹던 녀석이다.
부산에 첨 와서
자갈치에 망개떡이 유명하다기에
한번 사먹어 본 적이 있는데
그 떡을 싼 잎이 꼭 이 녀석같이 생겼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것을 망개잎이라고 하니
망개라는 나무가 있는가보다 할 뿐
그게 이건지 이게 그건지 모르겠다.
요즘이 한창 붉을 시긴데 길가에 빼꼼 머릴 내밀고 있기에
옛날 샘물 떠먹던 생각이 나서 한 컷 찍었다.
두어 시간 헤매다가
햇살 잘 드는 벤치에
가지고 간 간식을 꺼내 놓고 앉았다.
햐~ 이거 참...
스스로 알아서 나온 길이지만 왠지 쫓겨난 사람 같다.
적어도 두 시간은 더 버텨야 할 텐데 이 산속에서 뭘 한다??
간식을 펼쳐놓고
느긋하게 음악 들으며 커피도 한잔하고
떼죽나무 가지 꺾어서 새도 만들고
오면서 찍은 사진 확인해보고
카페도 들여다보며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사실은,
이 자리에 앉아서 실시간으로 올리려고 했는데
둔한 손가락으로 작은 자판 두드리는 게 쉽지 않아
그만 중도에서 포기하고 말았더랬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때 올리는게 현장감도 있고 좋았지 싶다.
평소엔 바쁜 사람 발목 잡던 핸폰이
이럴 땐 참 요긴하게 쓰이기도 하니
어차피 쓰는 거 이참에 좀 숙달시켜야겠다.
마지막 쉼터에서 시간가늠 하고 있는데
푸성귀 팔고 오시는지
할머니의 손수레가 가볍게 석양을 향하고 있었다.
운동한답시고 빠른 걸음으로 걷던 곳을
간만에 느긋하게 걸어보니
그동안 지나쳤던 자잘한 것들이 새삼스러웠다.
금년 단풍은 예년에 비해 더 곱다는데
세월이야 가거나말거나
어서 이곳에도 고운 단풍 들었으면 좋겠다.
-12.10.08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