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좋긴 좋은데...

강 바람 2012. 11. 25. 11:44

흥얼흥얼 산길 걷다가

발길에 채인 나무뿌리 하나 챙겨서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며 새 앉을 자리 골라보다가

카페 메모장에 한줄 남기고 터덜터덜 내려왔다.

 

 

세상 참 좋다.

손바닥만하 기계 하나로

산중에서 전화도 하고

인터넷 접속해서 글 올리기도 할 수 있고 

사진도 찍고

음악도 듣고

길 찾기도 되고

블로그 비슷한 기능도 있고

음악 들으며 사진 찍고 편집해서 올리고

오가는 길 지루할 땐

이어폰으로 모든 걸 차단하고 쉴 수 있고

밖에 나가서도 카페 훑어볼 수 있고

자판 두드리는 게 좀 어렵긴 하지만

글까지 올릴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이넘으로 쓰레기 게시물 걸러낸 것만 해도 여러 건이고

어제 아침에도 쓰레기 글 네 건인가를 걸러냈다.

새로운 게 나올 때마다 머리에 쥐나고

점점 둔해지는 손가락으로 이넘 익히느라 고생도 많지만

그만한 고생쯤은 감수할만하지 않은가.

 

그렇게 한 달쯤 써보니

이게 너무 친절해서 탈이다.

친구 신청도 오고

누가 글 올렸다고 알려주고

채팅 신청했다고 알려주고

아무개가 친구 아니냐고 챙겨주고

메시지 왔다고 알려주고

새로운 업데이트 있다고 알려주고

새로운 댓글 있다고 알려주고

댓글에 답글 있다고 알려주고...

좋긴 좋은데

시도 때도 없는 알림소리가 또 다른 구속이고

어느새 이넘에게 의존하는 자신을 보며

한 달도 채 못 돼서 알림소리 기능을 꺼버렸다.

카페가 유일했던 그 시절이 자꾸 생각난다.

 

 

어차피 쓰기 시작한 물건이고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건 분명하니

앞으로도 계속 사용하겠지만

겨우내 무료한 시간은 계속될 텐데 

종일, 고개 숙이고 이넘만 들여다본다면

목이고 손가락이고 시력이고 감당이 안 될 건 뻔하니

예방 차원에서라도

그 의존도를 조금 낮춰보고 싶은 거다.

  

낙엽도 치우지 못했는데

성급한 겨울이 베란다를 붉힌다.

 

 

갈 다 갔는데 뒤늦게 갈 타볼라꼬 선곡한 '낙엽은 지는데...' ^^

 

-12.11.25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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