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눈 내리는 날에

강 바람 2012. 12. 28. 14:47

 

 Rainbow Song 외 ...

나이 먹으면 밥 힘으로 산다는데

밥 맛 없는데다가 게으름까지 더해서 멍하게 며칠을 보냈다.

딱히 무슨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똥가리 만지는 것도 심드렁하니

치통 때문에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켜켜이 껴입고 산 초입 들러

붕어빵 세 마리 사들고 산길에 접어드니

찌릿한 겨울바람이

쭈글쭈글한 손끝에 빠르게 내려앉지만

그 바람이 꼭 차기만한 건 아니었다.

에구~ 손이라곤...

꼭 늘어난 고무장갑 같네.

 

 

좁은 샛길로 들어

낙엽을 깔고 앉아 붕어빵을 먹는다.

아직 식지 않은 단팥이 가슴을 데운다.

히~ 산길에 퍼지고 앉아 빵으로 점심 때우는 꼴이라니...

입으로는 빵을 먹고

귀로는 음악을 들으며

눈으로 떼죽나무를 찾는다.

길에 누운 나무그림자가 참 편해보인다.

 

  

이상하게도 겨울 산을 좋아한다.

훌훌 벗어버리고 앙상하게 섰지만

결코 초라하지 않은 나무

알알이 털어내고

빈 몸 바람에 맡긴 채 햇살에 졸고 있는 풀

그 가운데 홀로 푸른 소나무까지...

 

 

날씨 좋을 땐

올림픽 경보선수들처럼

두 팔 꺾어 든 잰 걸음들이 분주했는데

빈 의자만 나란히 졸고 있다.

재잘재잘 소곤소곤

아지매들 수다 없는 벤치는 차갑게 식어 있다.

그냥 내려가면

심심한 이 녀석들이 야속타 하겠지?

다리 꼬고 앉아 올려다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높고 시리다. 

 

  

어느새 열두 고개를 넘어 예까지 왔다.

어디 열두 고개 뿐이랴?

어떻게 왔는지

뭘 했는지

뭘 남겼는지...

더듬어 봐도 내세울 게 없다.

어떤 이는 하루를 평생인양 살라더라만

평생은 고사하고

하루를 하루처럼도 살지 못했으니

67 x 12 x 30...

둔한 머리론 어림계산도 안 되는 숱한 날을 거쳐

지금 여기 서 있음만도 그저 고맙지 않은가.

떼죽나무 가지와

길가에 차이는 나무뿌리 두개 들고 내려왔다.

 

 

"여보, 눈와요"

이불 박차고 내다보니

밤 사이에 세상은 하얗게 변햇고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아내를 돌아봤다.

처음 만나던 그때도 이렇게 눈이 내렸었는데...  

수줍음에 눈 맞춤도 못하더니 어느새 할매라니...

모처럼의 함박눈이

말라가던 가슴에 촉촉하게 내린다.

 

말 한마디도 조심스럽고

이말 하면 저 사람이 서운할 것 같고

저 말 하면 이 사람이 언짢을 것 같고

둘러말하면 솔직하지 못한 것 같고

바로 말하자니 내 속 들키는 것 같아 주저하게 되니

세월 탓인지

나이 값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엔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할 것 같았고

무슨 말을 해도 다 이해해줬고

내 속 들켜도 전혀 부끄럽지 않았는데...

 

 

하얀 앞산을 바라보며

머릿속에 대충의 그림을 그려 놓고

자를 건 자르고 벗길 건 벗기고 버릴 건 버리고 

베란다의 냉기에 쫓겨

당잘 쓸 것들만 들고 방으로 피신했다.

 

  

'민들레 다탁'이 졸지에 작업대가 되었다.

이 녀석...옛 생각이 새롭다.

처음 만난 게 2004년이고 그해 겨울에 터졌는데

이듬해 갈라진 틈 메우면서 민들레를 닮았기에 

'민들레원탁'이라고 이름 지은 녀석이다.

겨울이면 갈라지고

여름이면 다시 붙기를 반복하는지라

'습도계'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금년엔 잦은 비 덕분인지 예년보다 덜 터졌다.

녀석도 주인 닮아서

눈, 비 오면 벌어진 가슴을 메우나 보다.

 

틈은 메우고 흠은 고쳐 가리라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내 흠이 뭔지 알지 못하고 알아도 외면버리니

살아갈수록 흠은 늘어만 간다.

 

 

이맘때면 늘 의식처럼 치르던 

빛바랜 송년의 상념도 그저 시큰둥해진다.

미운 마음

귀찮은 마음

무시하는 마음

한 줌 더 쥐려는 마음

아옹다옹 이기려는 마음

마음 따로 말 따로 행동 따로인 나날이

비단 오늘만은 아닌데

오늘 하루의 반성과 다짐으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얻으랴마는

그럼에도 뻔 한 그 의식을 외면할 수 없음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살아가기 위한 다짐이리라.

 

오늘 눈 좀 쌓이겠다 싶었는데

뻔 한 부산 날씨에 눈은 비가 되고

질펀하게 녹아내린 눈 위에

느긋하던 걸음 대신 종종달음의 흔적만 어지럽다.

"나갈일 없는교?"

"와?"

"호떡이 묵고 싶어서..."

이래저래 똥가리작업은 틀렸고

호떡봉지 달랑거리며

어지러운 발자국 위에 내 흔적도 더하고 왔다. 

 

통사공 님들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새해엔 밝은 웃음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12.12.28 강바람-

 

줄줄이 음악

01. Rainbow Song

02. Devotion

03. Loving Cello

04. Erste Begegnung

05. A Festival In The Forest

06. First Yellow Leaf

07. Warm October Sun

08. A heaben Full Of Viol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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