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동백이 피었네요.
보통 12월에야 개화가 시작됐었는데
금년엔 뭔가 급한 게 있나봅니다.
주변의 다른 동백나무엔 꽃봉오리가 없고
딱 이 나무에만 스무 남은 개가 대기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의 환경에 따라 더 토실해지거나 말라버리거나
화색이 다르거나 낙화시기도 달라질 것이기에
그 봉오리들이 온전한 꽃이 되기까지 여전히 마음 쓰입니다.
동백꽃 찍는다고 얼쩡거리다 돌아서니
통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제라늄이 이 모양이 됐네요.
가지접합부가 유독 약해서 잘 부러져서?, 떨어져서?
이런 실수를 자주하는데 녀석들은 꺽꽂이가 잘 돼서 별 걱정은 없습니다.
어쩌면 이 녀석들의 생존전략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만약 그럴 목적으로 툭툭 떨어진다면
인간의 심성을 잘 이용하는 똑똑한 녀석들이라고
칭찬이라도 해줘야겠네요.
암튼 꽃 피는 시기가 꽤 오래가는 것 같으니
삭막한 베란다 사정으로 본다면 그 또한 칭찬할 일입니다.
오늘 꽂아 놓은 녀석 말고도 먼저 온 녀석도 한 뿌리 있지만
마땅한 화분이 없어서 대기 중입니다.
꺾여서 떨어진 영산홍도 있고 초대받지 못한 괭이밥도 있습니다.
저는 이 화분을 "야전병동"이라고 부릅니다.
베란다 구석에 있는 "바람공방"입니다.
여기서 새도 날아오고 포장마차도 굴러 나오고
연필꽂이도 나오고 드림박스도 나옵니다.
몇 달 소홀히 한 탓에 재료들이 많이 대기 중이네요.
여름엔 뜨거워서 오후가 돼야 앉을 수 있지만
요즘은 햇살 드는 오전에 앉습니다.
등짝이 따뜻해서 그냥 앉아있어도 좋습니다.
이 "관음죽"은 족히 30년은 됐을 텐데
짱짱하면 방안에 들어갔다가
시들시들하면 다시 베란다로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만해도 셋 중에 둘은 가고 남은 녀석마저 시원찮더니
상태를 보니 조만간 할매께서 방으로 모실 것 같네요.
할매가 젊은 시절에 입양한 녀석이라 특별관심대상이거든요.
"괭이밥"이 얼마나 극성인지 잘 아시지요?
암튼, 틈만 있으면 어디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녀석은 수분유지가 잘 되고 있는지 잎이 파랗습니다.
움푹한 골짜기라면 뿌리내리기 어렵지 않겠지만
가지를 자르고 잘 아무라고 끌로 움푹하게 다듬어 줬는데
그 얕은 곳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이러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신통하게도 햇볕드는 창밖을 향하고 있는데
통로에 서서 물을 주다보니 녀석들이 있다는 걸 깜빡 잊어서 그렇지
절대로 일부러 물을 주지 않는 건 아닙니다.
어쩌다 흠뻑 적시는 날도 있지만 물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으니
녀석들도 물기 없이 버티고 버티다보면
1차로 붉은 잎으로 버티고 2차로 탈색이 되더군요.
그 어려움 중에서도 때 되면 꽃을 피우니
때로는 하찮은 괭이밥에서 찡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노란 꽃을 앙증맞게 물고 있으면 정말 이뿌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더 챙겨주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작업 틀렸습니다.
컴 앞에 앉아있는 동안 베란다는 이미 그늘 뿐일 테니까요.
한해 한철 하루가 모두 소중한 요즘입니다.
일이든 휴식이든 즐겁고 알차게 보내세요.
건강들 하시고요...^^
-2019.11.23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