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베란다풍경2019

강 바람 2019. 11. 23. 13:41


 The Sky, Blue Canvas - Acoustic Cafe


벌써 동백이 피었네요.

보통 12월에야 개화가 시작됐었는데

금년엔 뭔가 급한 게 있나봅니다.

주변의 다른 동백나무엔 꽃봉오리가 없고

딱 이 나무에만 스무 남은 개가 대기하고 있습니다만

앞으로의 환경에 따라 더 토실해지거나 말라버리거나

화색이 다르거나 낙화시기도 달라질 것이기에

그 봉오리들이 온전한 꽃이 되기까지 여전히 마음 쓰입니다. 


동백꽃 찍는다고 얼쩡거리다 돌아서니

통로를 가운데 두고 마주한 제라늄이 이 모양이 됐네요.

가지접합부가 유독 약해서 잘 부러져서?, 떨어져서?

이런 실수를 자주하는데 녀석들은 꺽꽂이가 잘 돼서 별 걱정은 없습니다.


어쩌면 이 녀석들의 생존전략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만약 그럴 목적으로 툭툭 떨어진다면

인간의 심성을 잘 이용하는 똑똑한 녀석들이라고

칭찬이라도 해줘야겠네요.

암튼 꽃 피는 시기가 꽤 오래가는 것 같으니

삭막한 베란다 사정으로 본다면 그 또한 칭찬할 일입니다.

오늘 꽂아 놓은 녀석 말고도 먼저 온 녀석도 한 뿌리 있지만

마땅한 화분이 없어서 대기 중입니다.

꺾여서 떨어진 영산홍도 있고 초대받지 못한 괭이밥도 있습니다.

저는 이 화분을 "야전병동"이라고 부릅니다. 


베란다 구석에 있는 "바람공방"입니다.

여기서 새도 날아오고 포장마차도 굴러 나오고

연필꽂이도 나오고 드림박스도 나옵니다.

몇 달 소홀히 한 탓에 재료들이 많이 대기 중이네요.

여름엔 뜨거워서 오후가 돼야 앉을 수 있지만  

요즘은 햇살 드는 오전에 앉습니다.

등짝이 따뜻해서 그냥 앉아있어도 좋습니다.

 

이 "관음죽"은 족히 30년은 됐을 텐데

짱짱하면 방안에 들어갔다가

시들시들하면 다시 베란다로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전만해도 셋 중에 둘은 가고 남은 녀석마저 시원찮더니

상태를 보니 조만간 할매께서 방으로 모실 것 같네요.

할매가 젊은 시절에 입양한 녀석이라 특별관심대상이거든요.

 

"괭이밥"이 얼마나 극성인지 잘 아시지요?

암튼, 틈만 있으면 어디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이 녀석은 수분유지가 잘 되고 있는지 잎이 파랗습니다.


움푹한 골짜기라면 뿌리내리기 어렵지 않겠지만

가지를 자르고 잘 아무라고 끌로 움푹하게 다듬어 줬는데

그 얕은 곳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이러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신통하게도 햇볕드는 창밖을 향하고 있는데

통로에 서서 물을 주다보니 녀석들이 있다는 걸 깜빡 잊어서 그렇지

절대로 일부러 물을 주지 않는 건 아닙니다.



어쩌다 흠뻑 적시는 날도 있지만 물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으니

녀석들도 물기 없이 버티고 버티다보면 

1차로 붉은 잎으로 버티고 2차로 탈색이 되더군요. 

그 어려움 중에서도 때 되면 꽃을 피우니

때로는 하찮은 괭이밥에서 찡한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노란 꽃을 앙증맞게 물고 있으면 정말 이뿌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더 챙겨주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작업 틀렸습니다.

컴 앞에 앉아있는 동안 베란다는 이미 그늘 뿐일 테니까요.


한해 한철 하루가 모두 소중한 요즘입니다.

일이든 휴식이든 즐겁고 알차게 보내세요.

건강들 하시고요...^^


-2019.11.23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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