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햇살

강 바람 2007. 1. 1. 19:05

새해 해맞이는 게을러서 못가고

여늬날과 다름 없이 그냥 밍기적 거리다 보니

아침 햇살이 창가에 내려 앉았다.

잡다한 똥가리들이 해바라기를 하는데

붉은 것은 더 붉게

노란 것은 더 노랗게

햇살, 그가 있어 더욱 제답게 드러난 색들이

겨울 창가에 그렇게 한가롭다.

 

 

복사기 위에 앉아 

심심한 강바람의 늙은 손때를 묻히고 있는 이 녀석들도

지금 시각이 아니면 햇볕 구경 어려운터라

있을 때 실컷 흡수해 두려는 지 더욱 짙다.

  

 

 

어거지로 심은 저 소라껍질의 괭이밥은

타는 여름을 넘기고

낙엽지는 가을도 넘기고

이제 겨울을 버티고 있다.

남쪽나라의 겨울이라는 게

그냥저냥 미적지근한 날씨다보니

딱히 겨울이라는 표현도 겸연쩍지만...

 

 

12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한 동백은

삭막한 겨울 베란다를 밝게해주고

 

 

 

동백나무 옹이에 기어 올라간 괭이밥은

저 모습으로 석달 여를 버티고 있는데

어찌저찌 뿌리는 내렸지만

잎을 보니 살아가는게 여간 고생이 아닌가 보다

처음 그곳에 뿌리 내릴 때만해도 기세 등등하더니

지금 몰골이 말이 아니다.

들어다가 좋은 자리에 옮겨 주고 싶지만

그냥 그렇게 제 운명에 맡겨볼란다.

힘들겠지만 그것도 네 몫이니... 

 

 

도편수님께 얻어온 그릇에

강아지풀을 심었었는데 잎도 줄기도 말랐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용케 서 있다.

아침햇살을 받아 백골을 투명하게 드러낸 자태가

허허롭지만 의연하니

그 기상이라면 비록 죽었어도 그자리에 있을만하다.

 

 

뒷짐지고 영감처럼 얼쩡거리다가

햇살에 꼬여 기어이 집을 나섰다.

멀리는 못가고 집앞 작은 동산으로 나갔더니

윗쪽엔 눈이 왔네, 쌓였네, 길이 막혔네, 허리 뽀샤지네 야단인데
껴입고 나간 저고리가 부담스럽다.

한 계절을 늦춰 사는 것 같다.

 

이 녀석 이름이 뭔진 모르지만

오후 햇살이 녀석의 치마속까지 파고드는데

하얗게 반사되는 햇살로 그 속은 자세히 몬 봤다.

이녀석이 이름이 뭔지

이렇게 서있을 계절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따뜻하다.

심마니님이 보시면 그 사연 들려주시겠지...ㅎ

 

 

산으로 향하며

초입에 있는작은 절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들었으니

딱히 마시고 싶어서기보다

한적한 귀퉁이에 서 있는 자판기가 외롭게 보였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햇살의 따사로움과는 또 다른,

종이 컵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를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고...

 

 

덤불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열매.

죽어야 사는 저들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기다림뿐일는지...  

 

 

바람 피한 언덕엔

어린 녀석이 고운 가을옷 입은 채 

한가로이 해바라기를 하고

 

 

양지녘엔

이른 건지 늦은 건지 철쭉이 피었다.

지금 피어서 엄동에 우얄꼬 싶지만

녀석도 나름으로 계산이 있겠지...

 

 

그럭저럭 산 꼭대기에 오르니

쏴~ 밀려드는 바람이 시원하다.

이거, 윗동네 양반들 염장이라꼬 할랑가? 

 

한숨 돌리고 일어서는데

비닐에 싸인 큼지막한 시계가 눈길을 잡는다.

휴대폰과 비교해보니 한시간 반이나 늦지만

실상,

열시간 반을 빨리 가는 건지

아니면 열세시간 반을 늦게 가는 건지

그 보다 훨씬 더 늦게 가고있는지 모르겠다.

내 나이도

작년에 비하면 일년을 빨리 가는 거고

내년 이맘 때에 비하면 일년을 늦게 가는 거지만

까이꺼, 이왕이면 늦게 가는 걸로 할란다.

세월이 좀 먹는 것도 아니고...^_^

 

-07.01.02 강바람-

 

'바람소리 > 작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승달  (0) 2007.01.24
노가다와 똥가리  (0) 2007.01.21
2006 그리고 2007  (0) 2007.01.01
어울림  (0) 2006.12.27
말짱 황  (0) 2006.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