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해질녘 통도사

강 바람 2007. 3. 26. 11:35

어제,
손님이 오셨다가 가시는 길에 통도사를 들렀습니다.
때마침 저녁예불 시간이라
법고소리에 이끌려 들어선 통도사는
부서진 햇살이 수채화 물감처럼 서편하늘에 번지고 있었습니다.


여련화님

 

 

농부님, 선영이, 여련화님

 

 

이 나무는 얼마를 살았을까?
잘린 머리 위에 작은 생명이 움텄습니다.
좁은 공간에 씨앗이 자란 것처럼 보이더군요.
새싹인지 가지인지 그 진위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흔치 않은 삶의 이음이 경이로운데, 의심 많은 이 몸은
"혹시, 누가 일부러 심은 건 아닐까?"
에구~, 속물...ㅠ
 

 

가까이 가 보고 싶었지만
지은 죄가 커 감히 올라서지 못하고 돌아섰는데

 

범종루 앞에 다다라서는
자석에라도 붙은 듯 꼼짝 못하고
선 자리에서 북소릴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법고소리만 들으면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낮게, 낮게 땅으로 울리는 그 소리는
발바닥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다가
이윽고 가슴에 다다를 즈음에
예의 그 울렁증을 경험했습니다.
쿵쾅쿵쾅, 북소리는 가슴에서 진동하고
너울거리는 장삼의 소맷자락을 쫓으며
그렇게 넋 놓고 울림을 타고 있었습니다.  

 

괜히, 멀쩡한 사람 가슴만 흔들어 놓고
야속한 스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십니다.
반성합니다.
사십 여 년 전 옛 애인들에게...ㅎ

 

 

이 다리는 좀 낯서네요. 

세월 흔적도 별로 없고

계곡도 정비되고

길도 새로 만들고 축대도 다시 쌓은 듯합니다.

 

비가 오긴 했지만 흡족할 정도가 아니었음인지
넓은 계곡의 물들이 거의 서 있는 듯해서
좀은 아쉬웠습니다만, 대신
산사의 저녁 풍경과 잘 어울릴 듯한
흐름 속에서 정지된 풍경을 얻습니다.
편안하네요.

 

아주 편안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고한 자태를 뽐냈을 매화.
이제 그 앞에 줄 서는 카메라렌즈의 시선도 없고
오가는 발길들도 스쳐 지날 뿐입니다.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묻혀 지고 있습니다.
가는 저들은 담담한데
보내는 사람들이 왜 서럽다하는지...

 

지는 꽃은 지고
피는 꽃은 피고

 

집 앞 목련은 이미 지는데
이곳의 목련은 지금이 한창입니다.
절집에 살아서 더 깨끗한 듯합니다.
북소리에 홀리는 바람에
대웅전도 제대로 못보고 돌아서다보니
사진이 좀 아쉽습니다.
모자라는 대로 해질녘 산사의 고즈넉함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07.03.26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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