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꼬맹이 외손녀랍니다.
부산으로 이사와서 새 유치원에 첫 등원하는 날이라
기념으로 한 컷 찍었는데 버릇처럼 V자를 그립니다.
V자 그리기 전에 재빨리 찍으려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습니다.
출발 전에 길 초입에서 또 한 컷하는데
아침 햇살이 눈부신가 봅니다.
에구~못난이...
엄마 따라 졸래졸래 가는
녀석의 작은 등에도 아침 햇살은 밝게 내려 앉고
유치원에도 햇살은 가득합니다.
드디어 도착 했습니다.
"꿈이 크는 집"
이곳에서 녀석의 꿈도 무럭무럭 크길 빌며
발길을 돌려 왔습니다.
사진 편집하면서 보니
왼쪽 작은 거울에 제 모습도 찍혔네요.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그 곳.
주방에서 빤히 보이는
겨우 이백미터 남짓한 그길이 새롭게 보입니다.
며칠 전부터
첫인사 연습한다고 혼자 쇼를 하더만
잘 해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그렇게 연우의 또다른 세상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칫과에 가서 어금니 뽑아내고 솜뭉치 하나 물고 왔는데
지혈될 때까지 꽉 물고 있으라고 신신당부하니
입도 뻥끗 못하고 밥 묵는 거 구경만 했습니다.
손짓 발짓으로 손녀 몇시에 오느냐고 물으니 두시 반이라네요.
아직 한시간이나 더 기다려야 해서 꺼리를 찾다보니
작은 다관에 심은 제비꽃이 눈에 띄었습니다.
작년엔가 나무 화분에 심은 제비꽃이 씨앗을 잔뜩 물고 있는 건 봤지만
모두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하더니
금년 봄부터 화분 여기 저기에 낯선 싹들이 여남은 군데나 올라와서
첨엔 풀씨가 날아들어서 번졌는가 했습니다.
잎이 나고 모양이 갖춰진 후에 살펴 보니 제비꽃이었는데
며칠 전부터 지팡이처럼 생긴 줄기를 밀어 올리더니 씨앗을 품습니다.
첨 알았습니다.
제비꽃은 꽃을 피우지 않고도 씨앗이 올라 온다는 걸...
녀석도 새 삶을 준비하나 봅니다.
연우 데리러 유치원에 갔습니다
여럿 섞여 있으니 고녀석이 고녀석 같아서
이리저리 눈으로 아이를 찾는데
선생님이 누굴 찾는냐고 물으시는데, 덴당...
입을 앙다물고 있으니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손으로 불룩한 볼을 가리키며 글쓰는 흉내를 냈더니
종이와 팬을 들고 나옵디다.
허참, 졸지에 말못하는 할배가 되고 말았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조심스럽게 입속의 솜뭉치를 빼고
씻고 들여다 보고 툭툭 건드려도 보고 나오니
거실에 엄지손가락 만한 선풍기와 조명등 모형이 놓여 있었습니다.
웬거냐고 했더니 녀석이 하라버지 시원하라고 켜 놨다네요.
조명등은 신문보라고 켜 놨고...ㅎㅎ
옥수수를 삶아 주데요.
하늘나무공방표 접시에 공예가표 옥수수를 올려 놓고 보니
또 그들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반쪽이공방에서 만든 연우 책상인데
녀석에게 한 소리 들었습니다.
김자를 왜 이렇게 쓰느냐
동그라미가 왜 떨어져 있느냐고...
작은 의자에 앉아 노는 것 보고
저녁 산책을 하고 돌아오니
아홉시도 되기 전에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녀석, 딴에는 피곤했던가보지만
새로운 일상이 기다리는 내일도
오늘처럼 씩씩한 하루이길 바래봅니다.
이 가을, 님들도 나날이 좋은 날이시길 빕니다...^_^
-07.09.03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