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할배랑 아이랑

개구장이

강 바람 2007. 9. 23. 21:33

 

오늘 새옷 입고 등원하는 기념으로 한 컷 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훌쩍 큰 모습인데

예전과 달리 사진 찍을 때의 표정이 어색합니다.

그만큼 컸다는 이야기겠지요? ㅎ

그래서 일부러 V를 하라고 했더니 조금 밝아졌네요.  

 

지난번 가족운동회 때 찍은 사진입니다. 

녀석들, 기다리느라 지루했던지

터진 풍선을 쭈~욱 늘여서 입을 감싸고 있는 녀석,

입이 찢어지도록 하품하는 녀석,

돌아서서 뒷사람과 쫑알거리는 녀석,

제 줄이 어딘지도 모르고 가운데 뻘줌하게 선 연우...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아이들, 그럴 수 있는 녀석들.

제 애미는 줄 맞추지 못하는 것도 맘 쓰이고

선생님 따라 하라고 일렀건만

앞의 모니터만 쳐다보며 한 박자씩 늦게 가는 것도 신경 쓰이는가 보지만

이 녀석들에게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그냥,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 주는 것만으로도 족 할 텐데...  

   

더러 긴장도 하고

 

틀리지 않으려고 딴에는 고심하는 모습도 보이고

 

때론 멀뚱하게 넋놓고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한 걸음씩 배우며 크겠지요?

 

60미터 달리기 하는데 긴장되는가보네요.

 

출발했습니다.

이 녀석, 돌이 지나고도 한참 뒤에야 걷기 시작했는데 

걸음마가 늦어서 온 식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그랬는데도

때되니 다리에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하나씩 익혀가며 잘 자라서 

  

뒤뚱뒤뚱하면서도 열심히 달리고 달려 3등했습니다.

아주 잘했지요?

하긴 자기가 몇등인지 알기나 하겠습니까.

아이들은 등수 신경 안 쓰는데

지켜보는 어른들이 더 안달합니다...ㅎ 

지금은 겨우 60미터도 버겁겠지만

녀석들

비 온 뒤의 죽순처럼 쭉쭉 자라서

600미터도 뛰고 6키로미터도 뛰고

그 보다 더 더 먼 인생을 달릴 테지요.

 

녀석 데려다 주고 돌아 오는 길에

103동 화단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작은 꽃들을 찍고 있으니 

 

손녀와 함게 지나가시던 할머니께서 

뭐 찍을 게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작지만 들여다 보면 다 이쁘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씩 웃으시네요.

 

하찮다면 참 하찮은 꽃이지만 이 녀석들도

누군가 눈여겨 봐 주는 이 있어 꽃 피울 힘을 얻지 않았을까요?

사람이나 꽃이나...

 

녀석이 좋아하는 콩순이 인형도 예쁘지만

샘 낼 줄도 모르고

토라질 줄도 모르고

화낼 줄도 모르는 콩순이 보다는

 

제 눈엔 요녀석이 더 이쁩니다.

 

큰절도 배우고

송편 빚는 법도 배우고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녀석을 보면서

내 늙어 감은 잊은 채 

녀석의 성장이 더 없이 흐뭇하고 즐겁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꿈이 크는 그 곳에서

여럿이기보다 혼자의 시간에 익숙한 아이들이

배려하고 양보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스스로 느끼며

어울림의 소중함을 조금이라도 알아갔으면 싶은데

아무래도 제 욕심이겠지요?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할배가

아이의 눈으로, 생각으로, 높이로 거들어 주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내가 꽃을 밟음으로서 녀석도 꽃을 밟게 되고

내가 개미를 죽임으로서 녀석도 따라 하게 되는

그런 우는 범하지 말아야겠단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늘 수고하시는 선생님들께 감사 드립니다.

월요일 아침 문앞에서 또 뵙겠습니다.

 

가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습니다...^_^

 

-07.09.28 연우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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