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할배랑 아이랑
"아버지 이리와 보세요." 다급한듯한 딸의 부름에 가 봤더니 외손녀와 딸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딸은 뭔가를 말 하려 하고 연우는 "안돼!"를 외치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제 엄마의 입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더군요. 들어보니 녀석이 "할아버지 얼굴에 줄이 많다"고 했다나 뭐래나... 다섯 살 꼬맹이가 그 말의 뜻인들 제대로 알기나 했겠습니까? 다만 본대로 말했을 뿐이지만 제 엄마가 일러바치려하니 의미도 모른 채 막은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주름은 삼십대에 이미 생긴 것들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일이라 그냥 피식 웃었지만, 녀석이 무안한 표정으로 내 눈치를 보며 억지웃음을 짓기에 "할아버지 되면 누구나 줄이 생기는 거"라고 설명해 줬더니 안심한 듯, 그제야 웃더군요. 녀석의 유치원 길은 거의 나와 동행 하는데 그동안 잘 따라나서던 녀석이 며칠 전부터 자꾸 제 엄마랑 가겠다고 떼를 쓰더군요. 엄마가 데려다 주는 다른 아이들이 부러운가보다 했지만 그 아침의 말 한마디로 어쩌면 할아버지의 주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치원 가는 길에 쪼그리고 앉아 꽃들도 만져보고 나비를 불러보기도 하고 민들레 씨앗을 불기도 하며 재미나게 다녔었는데 "재미나게"란 나만의 생각이었을 뿐 꼬맹이는 엄마가 데려다 주길 더 바라고 있었나 봅니다 아들의 지갑에서 발견된 사진입니다. 구겨지는 게 안타까워서 아내가 압수해버린 서른다섯 해나 된 낡은 사진인데 언제부터 넣고 다녔는지 사분오열로 갈라진 선들이 깊게 패인 내 주름을 옮겨 놓은 듯합니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함께 걸어왔고 지지고 볶으며 자식 얻어 끌고 왔는데, 이제 녀석들의 넓어진 등을 바라보며 그렇게 또 가고 있습니다. 내가 봐도 낯선 모습. 늘 이렇게 머물러 있을 줄 알았는데 돌아봐 지는 그 길은 자꾸자꾸 멀어지고 내게는 결코 올 것 같지 않던, 구만리 같던 그 길은 이제 산 두어 개 그 너머 어디쯤까지 온 듯합니다. 성큼성큼 내딛던 당참은 한 구비 돌때마다 느려지고 이제는 돌아봐지는 일이 잦은 그런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 팽팽한 시절의 사진을 들이밀며 "할아버지도 줄 없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면 다섯 살 꼬맹이가 믿어 줄까요? 어쩌면 녀석은,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할아버진줄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요놈아! 까불지 마라. 이제 곧 쌍둥이 동생 태어나면 지금의 주름 많은 할아비의 손도 아쉬울 끼다...ㅎㅎ 며칠 전에 잘 마른 소나무 자투리가 있어서 접시를 만들어 봤습니다. 제 살로 다리도 만들고 반질반질하게 잘 닦았습니다만,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밋밋해서 재미가 없더군요. 그래서 옆과 밑을 쇠 브러시로 털어서 골을 팠더니 제 얼굴처럼 줄이 많이 생겼네요. 만졌을 때의 도드라진 감촉과 그림자에 의한 질감이 소나무의 소박한 맛과 아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줄이 많은 제 얼굴이 언감생심, 소나무를 닮았단 이바구는 아니구요. 해놓고 보니 윗 부분이 아무래도 허전해 보여서 또 욕심을 부렸습니다. 구절촌지, 쑥부쟁인지, 개미췬지 모르지만 암튼, 그 비슷한 넘을 연필로 그리고 칼로 새겨 아크릴물감으로 색을 입혔습니다. 색이 번졌기에 연한 사포로 닦았고요. 하지만 욕심은 끝 간 데 없어서 기어이, 밑바닥에 닉을 새겼습니다. 한 귀퉁이에 굳이 표식 하나 남김은 잘 났든 못 났든 내 얼굴이고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내 생이다 싶어서입니다. 아니면, 이 또한 욕심인지도 모르고요. 세수를 마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쭈~욱 귀 뒤로 밀어봅니다. 팽팽한 모습이 한 삼십년은 젊어 보이네요. 물론 보기에도 좋고요. 철없는 녀석의 눈에 비친 할아버지의 주름. 그 솔직함 앞에서 잠시, 아주 잠시 서운함이 일기도 했으니 예순 둘이나 다섯 살이나 거기서 거긴가 봅니다. 그래서 또 엉뚱한 상상을 해봤습니다. . . . 보톡스를 한번 맞아봐?...^_^ -07.11.11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