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할배랑 아이랑

꽁치와 꼴찌

강 바람 2007. 11. 27. 16:26
 

 

"연우야 밥 먹어, 꽁치도 있는데..."라고 했더니
녀석이 느닷없이 우~와~~앙 울음보를 터트립니다.
어리둥절한 식구들이 놀라서 물어 보니
"삼촌이 꼴찌라고 놀렸어~~엉엉..."
아침부터 와르르 한바탕 웃었지요.
"그게 아니고, 연우 좋아하는 꽁치가 있다고 그랬는데..."
머쓱해진 삼촌이 어르고 제 엄마가 달래서야 진정 됐습니다.

 

꼴찌 좋아할 사람 없으니
녀석도 당연히 꼴찌라는 놀림에 울음이 터졌겠지만
녀석의 식사 시간이 너무 느려서
늘, 등원시간에 겨우 맞추거나 지각이 잦은 터라
궁여지책으로 낸 꾀가 '밥 빨리 먹기'였는데
문제는 
그 경쟁의 상대가 유독 할아버지라는 겁니다.
할머니나 엄마는 일찍 먹어도 괜찮고
할아버지만 제 뒤에 남으면 된다는,
등수와 관계없이 꼴찌만 아니면 된다는 식인데
나한테만 경쟁심이 발동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한 숟가락만 남긴 채
녀석이 일 등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줘야 하기에
괜한 고집만 키우는 것 같아서
이즈음에는 아예 "내기"를 하지 않았는데
꽁치 건으로 녀석의 울음보를 또 건드렸네요.

 

좀 늦게 들어와
혼자 주섬주섬 저녁을 먹고 있는데
녀석이 슬그머니 오더니 재미있다는 듯이 한마디 합니다.
"할아버지 꼴찌...히히히..."
요놈 봐라?! 싶어서
"할아버지는 꼴찌해도 안 우는데...히히히"
질세라 꼬맹이 수준으로 짓궂게 답했더니
녀석의 표정이 바뀌면서
"나는 꼴찌가 싫단 말이에요..."며 울먹거리더군요.
아이쿠야, 클났다 싶어서 얼른 할배로 돌아와
"왜 싫은데?" 도닥이며 물었더니
"아무도 없으면 싫어요...찡찡..."하는데
혼자 먹는 게 싫다는 말인가 봅니다.

"아, 그래서 연우가 꼴찌를 싫어하는 구나..." 동조를 해줬더니
그제야 얼굴이 펴지며 빙긋 웃더군요.

 

그래, 연우야!
아무도 없이 혼자 먹는 건 할배도 싫단다.
네가 원하는 게 일등이 아니고 혼자 먹는 게 싫었던 것을...
그런 줄도 모르고 할배는
네가 욕심 많은 녀석이 될까 걱정했었지.
이젠 할아버지가 꼴찌 맡아 놓을 테니
걱정 말고 꼭꼭 씹어 맛있게 먹고 튼튼하게 자라라.

녀석, 잠자리에 들었데

콜록콜록 기침소리가 들리네요.
또 감긴가??...

 
사진의 솟대는
연우네 가족을 생각하고 만든 건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연우 동생 둘까지 합쳐
모두 다섯 마리의 새를 얹어서 만들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하면서...

 

-07.11.27 강바람-

 

 

 

 

 

'바람소리 > 할배랑 아이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많이 컸지요?  (0) 2008.02.10
연우공주  (0) 2008.01.11
할아버지의 얼굴  (0) 2007.11.11
반품  (0) 2007.09.28
개구장이  (0) 2007.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