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방문·만남

오래된 모습들...

강 바람 2007. 9. 16. 19:16

안개인지 구름인지

760미터의 백복령은 연막을 뿌린 듯하여

라이트에 비상등까지 켜고 살살 기어 넘었습니다.

길가에 차 세우는 것 조차 위험한 일이라

그나마 조금 안전한 곳에서 찍은 게 이 정도였으니 짐작하시겠지요.

멀리서 바라본 골짜기의 안개는 한폭의 수묵화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속에 들어 보니 수묵화는 볼 수 없고

답답하고 눅눅한 기운과

보이지 않음으로 생기는 불안만 온몸을 덮치더군요.

내가 처한 입장에 따라 같은 현상이 이토록 달리 보이다니

역시, 내가 그 입장에 서보지 않고는 감히

그를 안다고 말 할 수 없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사설이 길어 졌네요.

 

 

고개에 올라서니 허참,

안개는 어디가고 빗방울은 또 어디로 갔는지

거짓말처럼 훤한 길을 달려 그곳에 도착하니  

 

간밤에 퍼부은 비로 개울물은 콸콸 소리치며 흐르고

강아지 한마리가  경계의 목소리르 높이며 연신 짖는데

선녀와 나뭇꾼은

비 그친 텃밭에서 곰취(아마 맞을거야..ㅎ)를 옮겨 심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구부리고 있으니 무쇠허린들 성하랴...

 

역시, 그냥 씩 웃고 손 한 번 잡고

 

하릴없이 멀뚱히 구경만 했습니다.

이 아지매 감독관이라도 된 듯이 뒷짐 지고 밭 가운데에 서있네요.

 

여름 내내 땀 씻어 주던 선녀탕은

간밤의 비로 폭포가 되었습니다. 

 

작년의 코스모스는 금년에도 어김없고

 

이게 뭐더라?

엉겅퀴과의 무슨 약초라 했는데 또 까묵었습니다.

 

암튼, 몇년 전부터 봐 왔던 꽃들이지만

 

작년에도 그랬고 제작년에도 그랬듯이...

오늘도 변함 없이 반겨 주네요.

 

선녀님의 솟대 작품을 보며

 

내 오신 차와 과일을 얻어 먹고

 

항아리에 담긴 또 다른 세상과

여기저기 널린 낯익은 모습들에 눈길 한 번 나누고

무우와 감자와 곰취를 가득 싣고 길을 나섰습니다.

 

아내가 그럽니다.

이것저것 챙겨 주시는 선녀님 마음으로

마치, 친정 다녀 가는 것 같다고...

 

왔던 길을 돌아 다시 백복령을 넘으려는데

산에는 아까보다 더한 안개가 자욱합니다.  

 

길가의 장승도 안녕히 가라고,

조심히 가라고 인사하는 것 같습니다.

한시간 여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냥 얼굴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좋은

그런 하루였습니다.

 

두분 늘 건강하세요...^_^

 

-07.09.15 강바람- 

Phil Coulter-Take Me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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