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방문·만남
삼년전에 예약해 둔 송아지가 있었는데
차일피일하다가 오늘 처리 하려고 농부님댁에 갔습니다.
가마솥에 물 부터 끓이고 송아지를 잡으렸더니
이늠이 그동안 얼마나 커 버렸던지
가마솥이 너무 좁아 집어 넣을 수 없지뭡니까?
마당을 서성이며
이궁리 저궁리 해봤지만
마땅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때를 넘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니 어쩝니까?
송아지 대신 다른 늠이라도 넣자 싶어서
거시기랑 머시기를 넣고 익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익을 생각을 않네요.
견디다 못해서 밥부터 먼저 묵었습니다.
반찬은 솥에 있는 녀석 익으면 나중에 묵기로 하고...
오랜만에 보는 놋그릇과 놋수저...
예전에 저거 닦는게 힘들어서 스텐으로 바꾼 시절도 있었는데
여즉 이렇게 귀한 물건을 쓰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도 부럽데요.
역시 부잣집은 티가 난다니께...ㅎㅎ
밥이 이렇게 먹음직하긴 오랜만인가 싶네요.
다행히 한밤중이라 염장이라는 원망은 안 듣겠네요.
배가 부르니 그제사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데요.
꽃도 많고 볼거리도 많았지만
풍상에 삭은 사랑채와 담쟁이가 눈길을 잡아서
그래서 오늘의 테마로 잡았습니다.
사랑채의 황토색 벽과 바닥,
작은 찻상과 깊숙히 들어간 햇살과
흰벽과 푸른 담쟁이와
검정고무신과 흰고무신과 댓돌...
암튼 다정하고 포근한 모습이 좋아서 올려봅니다.
솥에 들어간 늠은
해가 지도록 익지 않아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삶다 말면 버리지도 먹지도 못하겠기에
만사 제쳐두고 내일 또 삶으러 가야겠습니다.
음악은 특별한 의미 없습니다.
그냥 올드 팜 몇곡 듣자는 것 뿐...
이밤도 좋은 밤되이소...^_^
-07.10.16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