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베란다의 가을

강 바람 2007. 11. 29. 21:37

얻어 온지 십여 년 된 단풍나무입니다. 

매년, 가을이 되어도 물들기 전에 누렇게 시들거나

기껏 두엇 닢 붉다가 말더니

금년엔 모처럼 고운 색으로 물들었습니다.

물을 줄였더니 그 영향이 아닌가 싶은데

바꿔 말하면 그동안 물 조절이 적절치 못했다는 이야기겠지요.

가을엔 물을 줄여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기에

가끔은, 큰 맘 먹고 하루 이틀 거르기도 해보지만

저러다 말라 죽지는 않을까 걱정 되어

사흘을 못 넘기고 또 물을 줘야만 했습니다.

연민이고, 안쓰러움이고, 노파심이었겠지요.

과잉보호인줄 알지만

그러지 않고는 내가 편치 않아서 어쩔 수 없었으니

그 역시 이 녀석을 위함 이기보다

내 편함을 위함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금년에는.

눈 딱 감고 버티다가 사나흘에 한번씩 물을 줬더니

이렇듯 고운 색이 들었습니다.

 

 

소사라는 이름의 녀석인데

이 녀석 역시 노란 색깔이 곱게 들었습니다.

자연 상태에서의 색깔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초록잎을 단 채 겨울을 나기도 하던 예년 모습에 비하면

이 황금색 물듦이 얼마나 소중하고 반갑던지요.

     

괭이밥도 그렇습니다.

소라껍질에 심은 녀석들인데

자꾸 보호하려는 마음이 앞서다 보니

녀석들 키만 껑충해지고 대신 줄기는 허약해져

원래의 당찬 모습들이 아니었습니다.

안쓰러움에 매일 물을 주다보니

위에 덮어준 이끼에만 잔뿌리를 내리고

굳이 흙에 뿌리 내릴 생각을 안 합니다.

매일 물을 주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나 봅디다.

넉넉한 흙이 있는 것도 아닌 차에 잘됐다 싶었겠지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물을 자주 주는 대신 그릇에 약간의 물을 담고

그 위에 올려 뒀더니 그제야 뿌리가 아래로 내려오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아예 사나흘에 한번씩 줍니다.

수반에 담은 물이 말라서 보충해 주는 셈이지요.

그 후론 나름대로 잘 견디고 있습니다.

   

 

이 녀석은 갯모밀인데

집에 들여올 때 이름을 몰라서 애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화원 아주머니는 개메밀이라고 알려 줬지만

인터넷을 온통 뒤져도 개메밀이라는 이름은 없더군요.

그러다가 어느 회원이 알려준 이름이 갯모밀이었고

재확인 해보니 갯가에 많이 산다고 해서 갯모밀이라더군요.

더러 갯메밀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요.

그 전에야 개메밀이든 갯메밀이든 갯모밀이든 관심조차 없었지만

내손에 들려지고 나니 그제야 관심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 역시 매일 아침 물을 듬뿍 줬지요.

화분이라는 게 거의 못쓰게 된 얕은 그릇이거나

보시다시피 소라껍질이다 보니

물 주기가 더 잦았는지 모르지만, 암튼

이 역시 과도한 관심으로 본래의 성질을 잃어 가더니

이 가을에 다시 제 색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꽃도 더 또렷하고 당차 보이네요.

 

사랑이 때로는 병일 수도 있음을 알았습니다.

스스로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견뎌온 녀석들이

점점 허약체질로 변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보살핌이라지만

나의 간섭과 관심은 사랑이 아니라 

구속이고 핍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하얗게 말라 있는 화분을 보면

물 호스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

주고 싶음 마음과 참아야 할 인내 사이에서 망설이지만

주고픈 마음도, 참아야 하는 마음도 모두

사랑이라고 우기면서요.

 

무심한 듯 돌아서 있는 아비의 심중에

질책해야 할 모진 마음과

그 한 구석에 자리한 아릿한 연민과

대신 가 줄 수 없는 안타까움과

토닥여 주고픈 격려와

나보다 더 낫게 살아주길 바라는 기대와

사랑하기에 들어야 할 회초리와

툭툭 털고 일어서기를 지켜봐줄 인내와

들키고 싶지 않은 부모로서의 이기심까지...

그 복잡하고 아린,

싸아~한 마음을 이 베란다의 풀들이, 내 새끼들이 알까요?

 

 

녀석들이 항변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왜, 답답한 곳으로 데려왔느냐고요.

왠 간섭이 그토록 심하느냐고요.

인정합니다.

내 욕심이었고, 내 이기심이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로해서 그 작은 몸짓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었고 

그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기에
내 거친 발걸음에 짓밟히는 풀과

소맷자락에 휘둘려 떨어지는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라도 품을 줄 알게 되었으니

방식이 다르고 또 옳지 못했을지라도

그건 그것대로 사랑이었다고 또 우기렵니다.

 

다 보내버린 줄 알았던 가을이

그렇게 아직, 내 가까이에 남아 있었네요.

11월이 가고 있습니다.

이젠 정말 겨울이겠지요?...^_^

 

-07.11.30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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