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할배랑 아이랑
원체 입이 짧은 녀석인지라
'한숟가락만 더 한숟가락만 더'라는 말이
매 끼니 때마다 식탁을 떠나질 않는다.
제 엄마는 애들 본다고 거실에서 서성이고
할매는 물병 가지러 일어선 참에 녀석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밥 맛이 별로 없지?"
"네~"
"사실은, 하라버지도 밥맛이 없단다.
하지만, 밥 안 먹으면 기운도 없고 생각도 잘 나지 않으니
어쩌겠냐, 꼭 필요한 거니 먹어 둬야지..."
"......."
"대신, 할머니한테는 비밀이다?! "
"왜요?"
"왜긴...할머니 식사준비 하신다고 수고하셨는데
우리가 밥맛 없다고 한 걸 아시면 서운해 하실테니까...ㅎㅎ"
"히~~알았어요, 비밀...히~~"
시무룩하던 녀석의 얼굴이 금새 밝아진다.
저녁 먹다 말고
"하라버지, 쉬~ 비밀...히히히..."하기에
"알았다 비밀...히히히, 낼 수영장 갈거면 많이 먹어라...히히히"
할머니는 그 비밀이란게 궁금한지 자꾸 캐묻고
그럴 수록 녀석은 더 신이나 킬킬거린다.
비밀이라는 것을
하라버지와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재미난가 보다.
"연우야, 우리 비밀 지켜야 돼?"
"예~~!"
녀석, 대답은 씩씩하게 했지만
오늘밤 제 엄마가 꼬드기면 십중팔구 불고 말겠지.
수영복 입고 까부는 모습이 재밌고 귀엽다...^_^
-08.07.12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