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 가꼬...오데 가꼬...
멀리 갈라니 씻기도 싫코...
에라 모자 눌러 쓰고 강변에나 가자.
수영강 산책로 따라 설렁설렁 걷는다.
뭐 바쁠것도 없고, 오라는데는 더더욱 없고...
뒷짐 지고 느릿느릿...
이 산책로의 길이가 십리 남짓한데
빨리 걸으면 왕복 100분 정도 걸리지만
오늘은 가는데만도 두어 시간 걸렸다.
가다 하늘 보고..
가다 발밑을 보고...
카메라 들이밀고 바람 잦길 기다리며
꽃에서 꽃으로 가고 길에서 길로 간다.
유독 보라색이 많이 띈다.
카메라가 좀 시원찮지만
까이꺼 느낌만 전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는데
오묘한 색깔을 오롯이 담기에는 좀 아쉽고
대표적인 가을꽃으론 구절초, 쑥부쟁이, 국화, 코스모스 정도만 아는데
꽃 이름 외우는 건 왜 그리 안되는지...
뭘 외우려기보다 그것 들여다보는데 정신 팔다보면
좀전에 봤던 건 깡그리 잊고
지금 보고 있는 건 다음 꽃을 만나면 또 잊게되니,
아무래도 학구적이진 못한가보다.
스님들의 만행(卍行)이라는 거,
그분들의 속내는 짐작도 못하면서
짐도 없고 걸림도 없어 보이는 그 모습이
부럽단 생각을 가끔은 해봤는데
그분들도 여기 이 나비처럼
걸머진 바랑 내려 놓고 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을까.
맞아...내가 정말로 겁내는 건
가는 것이 아니라
쉴때의 외로움이 더 무서웠는지도 모르지.
그래, 卍行은 접고
터덜터덜 게으르게 가는 慢行이나 하지 뭐...
그렇게 또 제 편한대로 얼버무리고
둘레둘레 길을 간다.
멀쩡한 길 버리고 강따라 간다.
녀석들 따라 가다보니 결코 한가로운 건 아니었다.
경계하랴, 먹이 살피랴
잠시도 쉬지 않고 두리번거리더니
시커먼 늠이 슬금슬금 따라오는 게 신경쓰였는지
카메라 촛점도 맞추기 전에 바삐 도망간다.
어떤 녀석은 바삐 도망가고
어떤 녀석은 무한정 기다린다.
날개가 없으니
이 녀석들이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햇살? 바람? 시간?
크든 작든 이름이 무엇이든
삶이야 다를 게 뭐겠는가.
갈길이 있고, 기다릴 시간이 있으니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모자라면 모자라는대로
그저 부지런히 가고
끈질기게 기다릴 수밖에 더 있겠는가.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기에,
함께인듯 하지만 어차피 혼자인 것을...
풀숲에 얼굴 묻고
잊혀진 듯 그렇게 살지라도
더러, 가는 길 멈추고
고개 숙여 얼굴 한번 쓰다듬는 이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사는 위안은 되지 않을까.
지치고 힘들겠지만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고
기약할 수 없을지라도 기다림은 희망이려니
법칙에 순응하며 기다렸다가
할일 다 한 뒤라면야 화석이 된들 어떠랴.
내가 건져 올릴 게 월척일지 송사리일지,
아니면, 부질없는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뻐근한 다리를 끌며 慢行의 반환점을 돈다...^_^
-08.11.04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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