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밭 갈아 달라 아들을 조르고
아들은 그냥 사 먹자고 어머니를 달래지만
땅 놀리는 건 죄악이라 여기시는 팔순의 그 노모께선
나눠 주는 재미 또한 버릴 수 없으셨는지
모종 사 들고 굽은 허리로 밭전을 기웃하신다.
마지못한 아들은 삽과 괭이를 들고 밭으로 들고...
굳은 땅 뒤집어
객토와 비료 버무려 보슬보슬 달래 놓고
줄 당겨 골 치고 밭두둑 돋우는 아들의 등에
해거름의 남은 빛이
배어난 땀에 부딪쳐 반짝인다.
반나절 품은 좋이 들었고
모종 값 얼마에 비료 값 얼마
물주고 벌레잡고 비오면 도랑내고
이제 시작일 뿐 들일 정성이 가득한데
등 굽은 노모의 이어질 수고가 안쓰러워
이제 그만하시라 만류해 보지만
어머니 마음이 그러하시니 어쩌랴.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뒷짐지고 받아 먹기만 하는
누이와 아우로 인해 사나워 진 그의 심사에
한 가닥 위로라도 될까 싶어 괭이 들고 밭으로 들어갔다.
겨우 서너 골에 허리는 뻐근하지만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이 의외로 시원하다
괭이와 삽을 갈무리하고
팔뚝으로 이마를 훔치며 바라본 밭고랑엔
어느새 어둠이 짙게 드리웠다.
오늘 아침
공방에 모종을 두고 가셨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났더니
아니나 다를까
유모차에 의지한 그의 노모께서 오셨다.
흐린 하늘에 바람마저 수상해
그 하늘 올려다보며 주춤하시더니
그도 잠시
이내 밭고랑에 주저앉아 흙을 헤집는다.
모종 잡은 노모의 손톱이 까맣다.
힘드신데 쉬시지 그러시냐고 운을 뗐더니
안 그래도 애들은 그만하라고 하는데
살아있는 동안 김장꺼리는 해주고 싶다 하시며
바쁘게 손 놀려 보시지만
울먹이던 하늘은 기어이 비를 내리고
몇 번이나 하늘을 보다가 두어 골 남긴 채 일어서시더니
체념인지 자위인지
물은 안 줘도 되겠다며 혼잣말 남기시고
기억자 노구를 유모차에 기대어 자리를 뜨신다.
거센 비바람에
막 심은 배추모종이 눈에 밟혀 나가 봤더니
빗물은 이미 흥건하여 바라보는 심사가 편치 않았다.
다행히
삼 십분도 못되어 빗줄기는 멎었지만
물기 머금은 하늘은 여전히 낮게 드리웠으니
바라건대
어린 싹들이 온전히 뿌리 내릴 때까지
며칠만 참아 줬으면 좋겠다.
이틀간 지켜보니
노모의 마음도 아들의 심기도 알듯하다.
아침 늦게 전화가 왔다.
"형님, 밭에 배추 심던교?"
"응, 아까 심었는데 비 때문에 서너 골 남기고 내려 가셨다."
"A~C...비오는데 뭔 청승인지...%%^*((%^..."
지켜보자니 거시기하고 그냥 있자니 머시기한 그의 마음...
그 어머니께서도 아들의 그 마음 아실 테지만
어제와 같은 모자의 실랑이는 내년에도 여전하리라.
스스스~~
감나무 사이로 물 먹은 바람이 무겁게 훑고 간다.
-10.09.11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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