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작은이야기

찢어진 바지를 보며...

강 바람 2010. 8. 24. 22:09

 

바지를 깁었다.

새걸로 사입으라는 아내의 권고도 무시하고 

재봉틀 내 놓으라고 고집을 부렸더니

베란다 구석 묵은 살림살이 밑에 있어서 꺼낼 수 없단다.

재봉틀은 돌릴 수 있는데 손 바느질은 차마 못하겠기에

대충 꿰매달라고 던졌더니 물끄러미 쳐다본다.

설마 이걸 입고 나들이 갈거냐는 그런 눈치지만

똥고집에 밀려서 이렇게 꿰매준다.

 

이 반바지는 통사공 가입하던 해에 산 거고

어른이 된 뒤, 처음으로 외출해 본 반바지인데

일테면, 겉치레를 벗기 시작한 산 증거물 같은 거다.

그로부터 이 바지는 단골 여름복이 됐으니

군인으로 치면 군복이요, 학생으로 치면 교복인 셈이다.

이것 입고 여러 곳을 헤맸고

이것 입고 만난 사람 또한 여럿이니

이 옷에 스민 추억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벌써 6년이나 입었으니 헤질만도 하다.

내년 여름엔 재봉틀 끄집어 내서

헤진 옷에 추억을 덧데어 덕지덕지 누벼야겠다.

 

-10.08.24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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