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를 깁었다.
새걸로 사입으라는 아내의 권고도 무시하고
재봉틀 내 놓으라고 고집을 부렸더니
베란다 구석 묵은 살림살이 밑에 있어서 꺼낼 수 없단다.
재봉틀은 돌릴 수 있는데 손 바느질은 차마 못하겠기에
대충 꿰매달라고 던졌더니 물끄러미 쳐다본다.
설마 이걸 입고 나들이 갈거냐는 그런 눈치지만
똥고집에 밀려서 이렇게 꿰매준다.
이 반바지는 통사공 가입하던 해에 산 거고
어른이 된 뒤, 처음으로 외출해 본 반바지인데
일테면, 겉치레를 벗기 시작한 산 증거물 같은 거다.
그로부터 이 바지는 단골 여름복이 됐으니
군인으로 치면 군복이요, 학생으로 치면 교복인 셈이다.
이것 입고 여러 곳을 헤맸고
이것 입고 만난 사람 또한 여럿이니
이 옷에 스민 추억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벌써 6년이나 입었으니 헤질만도 하다.
내년 여름엔 재봉틀 끄집어 내서
헤진 옷에 추억을 덧데어 덕지덕지 누벼야겠다.
-10.08.24 강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