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사월에 다녀왔으니
꼭 반 년 만에 다시 찾은 무무공방이지만
어떤 반년은 어제인 듯 하고
또 어떤 반년은 오래전인 듯하다.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겠는가
봄이면 봄이라서 그렇고
가을이면 가을이라는 핑계일 뿐...
나무가 있고 음악이 있고
뜨끈한 구들장이 있고 모친의 구수한 시래깃국도 있고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맞아 주는 사람까지 있으니
바람이 되어 못 갈 곳 있으랴.
'부산아자씨 오셨는교?"
쥔장은 수업하러 학교에 가고
꽃밭에서 풀 뽑고 계시던 모친께서 맞아주신다.
마주 잡은 손이 더 마르셨다.
글썽하다.
무엇을 얻으렸던가.
화려하지 않아서 좋을 수더분함에 묻혀
반쯤 식은 봉지커피 한 잔 놓고
돌담장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들과 눈 맞춤하며
위로와 정화를 얻었으니 그로서 족할 뿐...
길
어느 땐 떠나기 위해 길을 찾고
어느 땐 길을 보며 떠날 채비를 한다.
길에 그리움이 서려서일까.
그리움이 길을 만드는 걸까?
어제 왔던 이 길은
내일은 또 떠나는 길이겠지.
켜켜이 쌓인 숱한 발자국 속에서
내가 찍어놓은 흔적을 들추어 본다.
이 길 그 어느 곳에
내 이기심의 발자국도 있겠지
남들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위선의 흔적도 있으리라.
오가는 길모퉁이에 작은 꽃 되어
지친 나그네 눈 쉼은 못해줄망정
부끄러운 그 흔적은 제발 보이지 않았으면 싶다.
꽃은 피고 지며 씨앗을 남기고
벼 벤 자리엔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다.
그들은 주어진 본능에 충실할 뿐
제 모습이 고운지 미운지 모르고
익충인지 해충인지도 모르고
어린 싹이 추위에 떨 것이란 것도 모르며
이치대로 순환하니 얼마나 정직한가.
부끄럽다.
푸른 하늘도 좋고
붉은 단풍도 좋고
보랏빛 가을꽃도 아름답고
넓은 황금색 들판도 풍요롭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다겠는가?
누구는 음식을 들고
누구는 막걸리를 들고
누구는 기타를 치고
누구는 색소폰을 불어 주는데
한 잔의 막걸리에 겨워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랠 부른다.
술이, 분위기가 사람을 용감하게 하나보다.
모두가 떠난 고요한 밤
장작으로 달군 구들장에 큰댓자로 누워
청량한 온기를 전신으로 느끼며 빗소리를 듣는다.
토닥토닥, 차양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어머니의 손길처럼 포근하다.
자장자장....자장자장...
무무님 깰세라
살금살금 새벽 문을 열었다.
물먹은 초목과 산허리에 감도는 안개가 포근하다.
도시라면 음산했을 풍경이
한 폭의 그림인양 차분하게 펼쳐졌다.
늦은 아침 뒤에
차실 문 활짝 열고 커피 한 잔을 들었다.
역시 봉지커피다.
한눈팔지 않은 추녀물의 고집이
내게 어떤 말을 전하려 하지만 외면한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처럼 그렇게 정직할 수 없다.
내 목부터 축이고
내 몸부터 데우고
내 배부터 채우며 사는데 감히 널 어찌 닮겠는가.
잠시 반성하는 척하다가
시선 돌리는 즉시 잊고 마는데...
에고~ 봉지커피가 다 식었넹.
가랑비는 여전히 머리를 적시는데
안토니오님이 오셔서 서출지로 갔다가
칼국수와 부침개와 막걸리로 배 불리고
가을색만큼이나 붉어진 얼굴색을 달랜 후에
촉촉하게 젖은 길따라 돌아왔다.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나도 남도 모두 편안할
소담한 풍경의 작은 소품이고 싶지만
때로는 아무 역할도 없는 여백인들 어떠랴.
그 풍경에 해 되지 않을 존재만 되어도 좋으련만...
모처럼 뵌 님들 모두모두 반갑고 고맙습니다.
다음엔 또 어떤 핑계로 뵙게 될지 모르지만
다시 뵐 때까지 내내 건강하이소...^^
-101026 강바람-
음악 : Journey Of Dreams - Guido Negrasz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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