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가출했다.
흙집과 목공방이 있어 내게는 참 고마운 장소인데
컴 앞에 앉아 있으면
저 작은 창으로 계절이 들고 계절이 난다.
오른쪽 하얀 지붕 옆의 노란색 넝쿨은 토사자라고 하는 식물인데
술 담그면 좋다고 해서 훑어 놓고 감나무로 간다.
몇 남지 않은 감을 딴다.
참 높고 맑기도 하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 아까워 간만에 셀프 놀이를 했다.
타이머 맞춰놓고 허급지급 사다리에 오르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연상되어 멋쩍다.
무늬가 이쁜 까만 흑단으로 머리핀을 만들었다.
뭔가에 몰두하고 있으면 시간이 참 빨리 간다.
시간 죽이는 데는 이만한 놀이도 없지 싶다.
마감 칠 굳을 때까지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앉으려고 끌어 당긴 의자에
곱게 물든 나뭇잎이 먼저 앉았있다.
곱다.
햇빛이 투과된 그 색 참 곱기도 하다.
무엇을 보는 것도 안 보는 것도 아닌 그 멍~한 시간이라니
남쪽 가을은 아직이지만
하늘 높고 단풍 붉어지고 감 익고 모기 사라지고
할머니의 텃밭 한 부분이 비어가니 조바심이 앞선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날씨가
군불 넣기는 이르고 그냥 자긴 좀 춥고 그렇다.
길어진 여름에 짧아진 가을이라니...
여름이 더우면 겨울도 맵다던데
다가올 겨울은 또 얼마나 춥고 길까?
채 느껴보기도 전에
훌쩍 가버릴 것 같은 가을에 조바심을 낸다.
특별한 그 밝음으로 세상을 밝히고
특별한 그 온기로 생명을 보듬던 해는
황홀한 잔영을 남기고 산넘어 간다.
꽁꽁 얼려 놓은 식은 밥이 생각나서
누룽지 어떻게 만드느냐고 전화를 했다.
아내가 깔깔 웃는다.
후라이팬...
물 자박하게...
약한 불로...
주걱으로 자근자근 눌러주고...
암튼, 평생 처음으로 누룽지를 만들었다.
눅눅한걸 보니 물이 많았나 보다.
아니 불이 약했는지도 모르고...
참 별일이다.
홀로 나대다보니 누룽지까지 만든다. 참...
솟대를 친구 삼아 컴 앞에 앉았다.
창밖의 밤은 까맣게 깊어 가는데
풀벌레소리가 밤공기를 가늘게 찢는다.
세상의 잡다한 소식들이 다투어 명멸하는 모니터에 눈 꽂고
아드득아드득 누룽지를 씹으며 낯선 세상 낯선 이야기를 훑다보니
두어 조각 남은 누룽지 조각이 낯선 나라의 지도인양하다.
먹기를 멈추니 다시 들리는 풀벌레 소리...
혼자 놀아도 시월은 가고 가을도 간다...^^
-10.10.29 강바람-
음악 : 코헨 디 울프 - Silk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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