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의 종종 걸음을 소 닭 보듯 하다가
정해 놓은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슬슬 걱정이 생겼다.
처음 상견례라는 걸 할 때만 해도
'나이 찬 딸 이제야 보내는구나'
'한 걱정 덜었구나' 싶었을 뿐이었고
혼수니, 예단이니
뭘 그렇게 따질 것도 많고 고를 것도 많은지
숟가락에서 가전제품까지
비싸네, 싸네, 좋네, 나쁘네 하루가 멀다 하고 야단법석인데
그 분주함 뒤에서 거든다는 게 청첩장 주소 쓰기가 고작이며
가끔은 '그거 얼마짜리야?'하고
모녀에게 김빠지는 소리만 해 대다가
그 날이 코앞에 닥치니 이런 저런 잡다한 걱정이 앞섰다.
손님은 어떻게 맞을 건지.
내가 아내 오른쪽에 서야하는지, 왼쪽인지.
신부 입장시킬 때는
왼팔을 껴야 하는지 오른팔을 껴야하는지가 헷갈려
조카들 결혼식 장면을 떠올려보다가
엉뚱하게도
입장할 때 눈물이 나면 어쩌나?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머리를 내밀더니
여기 저기 분산됐던 걱정들이 모두 거기로 모였다.
왜 그러는지 그 연유는 모르지만
유독 눈물이 많은 체질(?)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청각적 자극에 그 증상이 더 심한데
십 수 년 전, '서편제'란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갔다가
옆에 앉은 아내에게 얼마나 민망했었는지 모른다.
'정선아리랑', '그리운 금강산' 은 물론
'향수'와 같은 노래에도 코끝이 찡 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울컥거리는 이상체질(?)때문에
가족들 몰래 베란다에 나가 애꿎은 담배만 뻑뻑 빨아대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괜히 코푸는 척하며 감정 다스리는,
이상하리만치 예민한 체질이라
신부 입장시키는 것도 예사 걱정이 아닌데
결혼식 막바지에 치러야 할
부모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절차가 더 부담스러웠다.
신랑신부에게 절시키면서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게
'나~아 시~일 제 괴~애 로움...' 그게 또 얼마나 애절하던가.
걱정 속에 결혼식 날은 어김없이 찾아 왔다.
손수건을 두 장이나 챙겨 넣고
딸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데, 웬걸?
걱정했던 눈물은 나오지 않았고
예식 끝 무렵 딸과 사위의 감사의 인사와
예의 그 걱정스럽던 '어머님 은혜'가 울려 퍼지는데도
조금 찌~잉 할 뿐 더 이상의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옆을 보니
아내는 눈물 훔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폐백이다 뭐다 정신없이 끝낸 뒤
누님들께서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거드셨다.
'딸 시집보내는데 눈물이 안 나던가?'
대답대신 씨~익 웃고 말았더니
아내는 그런 내가 신기했던지,
아니면 그 무정을 나무라는지
내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괜히 죄지은 것처럼 시선 둘 데가 없었다.
그러구러
애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지지고, 볶고, 굽고, 찌고
거기에다 갖가지 양념으로 모양을 내서는
저녁 해거름에 사돈댁으로 갔다.
저녁 식사에 잘 하지도 못하는 술까지 한잔하고
이런저런 의례적인 인사를 마친 뒤 사돈어른의 배려로
안방에 마련한 조촐한 다반을 사이에 두고 딸과 마주 앉았다.
'시부모님 잘 모시고, 남편 잘...'
당부의 말은 마무리도 못한 채
콧속에 고이는 감정을 모질게 밀어 넣고
눈가에 번지는 물기를 두어 번 찍어 누른 뒤
떨어 질줄 모르는 아내와 딸의 어깨를 토닥거려
간신히 떼어내서는 사돈댁을 나섰다.
큰길까지 배웅 나온 사돈과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언뜻 본 딸의 모습이 왜 그리 애처롭던지
한 걸음 내딛는데 눈앞이 어른거린다.
그간의 참았던 눈물이 일시에 쏟아지려는지
눈물은 이미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만 것이다.
옆에 선 아내는 연신 뒤돌아보며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돌아 볼 수도 없어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내 딛는데
웬 일인지
그 눈물을 애써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랬었는데
그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해를 훌쩍 넘기고
제 딴엔 씩씩하게 산다고 으쓱거리지만
새끼를 매정하게 몰아낸 어미 새가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음을 새끼는 알까?
앞으로 얼마나 더
새끼 때문에 어미새가 울어야 할지는
새끼 너도 모르고
어미 나도 모르리.
얘야!
정말 울고 싶을 땐 아비에게 기대어라.
그리고 훌훌 털고 다시 일어나렴.
삶이란 생각보다 덜 불행할 수 있고
생각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더구나.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04.03.22 딸의 결혼식을 회상하며...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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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품 제작과정-
7년전에 쓴 글을 새삼 들춰 보는 것은
잡품과 관련된 이야기라 참고삼아 올렸습니다.
새색시였던 딸은 어느새 세 아이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꾸려갈지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여덟살 손녀와 네살짜리 쌍둥이 손자까지 정신 없지만
딸은 처음부터 그래왔던 것처럼
어느새 능숙한 9년차 주부가 돼 있네요.
울고 싶을 땐 아비에게 기대라고 했는데
이즈음엔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기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썼던 글들을 훑어 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이 자주 들다보니
정리해서 종이로 남기고 싶기도 해서 그런가 봅니다.
디지탈이 좋다지만 아무래도 종이만 못하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야기 주제에 맞는 잡품들을 만들어 보기로 했네요.
향나무 똥가립니다.
내 손에 들어온지 2년도 넘었는데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서 시작했습니다.
어미새의 눈물이라고 쓰니 모두들 영문을 몰라하는 눈치였네요.
단순히 이것만 놓고 보면 모르는게 당연하지 싶습니다.
루터로 파내고 끌로 다듬고 작은 글씨는 길곡님 도움으로 마무리 하고
아크릴 물감으로 칠했습니다.
지난번 했던 것과 같이
각목으로 틀을 만들어 유화용 캠버스를 쒸우고 잡품을 붙일 생각이었습니다.
뭔가 배경을 넣으면 좋을 듯해서
딸래미 사는 그곳이 밝고 따신 곳이길 바라는 마음에
숲을 표현하려 했는데 막상 잡품을 붙여 보니 영 아니었네요.
한마디로 죽도 밥도 아닌 꼴이지 뭡니까.
그래서 몽땅 뭉게버리고 어둡게 다시 칠했는데
이번엔 새의 검은 색과 배경이 겹쳐서 주제가 드러나지 않았지요.
다시 뭉게고 푸른색에 흰점으로 처리 해서 이렇게 마무리 했습니다.
옆에서 구경하던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꼭, 눈오는 것 같네..."
그러고 보니 좀 그렇긴 합니다만
언제는 청춘의 색, 희망의 색이라고 우겼는데
"파란색은 넘 차갑고 슬픈 느낌이 안드나??"라며 억지 부렸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꼴이네요...^^
배경 음악의 가사를 덧붙입니다.
퍼온 것이라 가사 내용이 제대로 된 건지는 저도 모릅니다.
Wedding Song (There is Love) - James Last
He is now to be among you at the calling of your hearts
Rest assured this troubadour is acting on his part
The union of your spirits here has caused him to remain
For whenever two or more of you are gathered in his name
Well a man shall leave his mother, and a woman leave her home
there is love, there is love
And they shall travel on their way the two shall be as one
As it was in the beginning is now until the end
Woman draws her life from man and gives it back again
And there is love there is love
And what's to be the reason for becoming man and wife
Is it love that brings you here or love that gives you life
For if loving is the answer then who is the giving for
Do you believe in something that you're never seen before
Oh there is love there is love
And what is to be the reason for becoming man and wife
Is it love that brings you here or love that gives you life
For if loving is the answer then who is the giving for
Do you believe in something that you're never seen before
Oh there is love, there is love
하나였던 것이
잠시 나뉘어 둘이 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어
먼 하늘을 향해 한 배로 서로의 노를 젓는다.
한 동안 그리움은 새로움이었고
잠 못 이룬 괴로움도 옛 것은 아니었기에
비로소 필연은 한 길로 만나 오늘을 이루었다.
어둠이 오거든 사랑의 빛으로
어려움이 오거든 인내와 지혜로서 이기고
땅 끝에 이르면 서로의 외 날개를 펴라
온전한 세상에 다다름은 부여된 당신의 축복
모진 세월에 백합 빛 백발과 황금빛 미소의 잔주름이 늘지라도
존경과 섬김의 지혜는
더욱 완전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리니
첫 마음을 품고 잘 살겠노라 메아리 된 아침처럼
먼 후일
우리 앞에 고이 다시 섬은
그대들의 약속
-11.01.27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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