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나무이야기

솟대 - 인연

강 바람 2011. 4. 23. 00:05

kevin kern - Remembering the Light  

 

또 솟대입니다.

간만에 창원에 넘어가서 이걸 만들었는데

솟대받침은 제법 오래 전에 얻어 놓은 똥가리지만

마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아서 먼지 뽀얗도록 방치하다가

참으로 우연하게 기둥꺼리를 구해서 부랴부랴 시작했습니다.

길곡님 농장 입구에 등나무 넝쿨이 무성해서

옆에 있는 다른 나무를 못살게 하기에 가지정리를 했는데

꼬불꼬불한 것이 딱 제몫이다 싶더군요.

그걸 간추려서 음지에 뒀다가 껍질을 벗겼습니다.

 

오전 내내 씨름해서 겨우 벗겨놓고 보니

오른쪽으로 휘어진 가지가 3미리도 채 안되는지라

새를 앉힐 방법이 마땅찮았지요.

오른쪽 가지가 없다면 재미가 없을 테고

가운데에 구멍 뚫으면 십중팔구는 부러질 테고

직경 3미리의 굵기에 1.5미리 이상은 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1미리로 뚫으면 대나무 핀이 너무 약해서 부러지기 십상이고

철사로 대체하는 건 존심상 싫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대다가

궁하면 통한다고 이런 잔머리가 생기데요.

가느다란 대나무가지 하나를 잘라서

곁가지가 있는 마디를 중심으로 양쪽을 잘라내고

2.5미리 구멍을 뚫은 뒤에 사포로 살살 달래어 끼웠더니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더군요.

 

 

 

받침은 멧돼지를 닮았습니다.

처음엔 받침 가운데에 기둥을 세우려 했지만

제가 원래 변덕이 좀 심한편이라서

나중에 또 어찌 될지 몰라서 뒤에 꽂았습니다.

그래야 재활용할 수 있지 싶어서요.

그리고 멧돼지 코 부분에 조그맣게 닉을 새겼습니다.

떼죽나무가 마르니 속살이 별로라서

좀 산뜻하게 보이라고 새 가슴과 꼬리 밑은 흰색으로 칠했습니다.

 

 

이렇게 완성했습니다.

받침 빈자리에 작은 찻잔을 올려놓으면 좋을듯합니다.

느티나무자투리, 등나무가지, 떼죽나무로 만든 새...

전체높이 58cm / 받침길이는 27cm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눈뜨자마자 거울부터 봤습니다.

혹시, 눈에 이상은 없는지 걱정이 돼서요.

의사는 눈의 피로를 줄여주라고 하지만

내 일상이

컴 아니면 티비거나 그것도 아니면

똥가리 잡고 씨름하다보니 의사의 권고를 따르기 쉽지 않습니다.

 

아내가 옆에 오더니, 또 아프냐고 묻습니다.

그때서야 제가 한쪽 눈을 감고 있다는 걸 알았네요.

약 2주간 외눈으로 지냈더니 그게 습관이 되었나봅니다.

아니라고, 미리 조심하는 거라고 둘러댔더니

눈도 안 좋은데 컴에 애인 숨겨뒀느냐,

그거 하면 재밌느냐,

그거 몬해서 우찌 견뎠느냐...심술입니다.

머쓱해서 씩 웃고 말았지만

이 작은 모니터에 담긴 인연들과의

이런저런 사연들을 아내가 알리없지요.

때로는 신분을 뛰어 넘고

때로는 연식도 뛰어 넘으며

사소한 인연으로 만나서 알콩달콩 잘 지내기도 하고

만날 때보다 더 사소한 이유로 티격태격 헤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 탓이든 네 탓이든

종종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비록, 끊어진 인연일지라도 부지불식간에 그들이 떠오르는 이상

그 연이 결코 다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맺기는 쉬워도 끊기는 어렵다고 했나봅니다.

 

느티나무똥가리가 등나무가지를 만나서

주춧돌 되고 기둥 되어 한 쌍의 예쁜 새를 앉혔으니

그것도 인연이라면 또 인연이겠지요.

수컷이 언제 날아갈지

암컷이 수컷을 쫓아낼지도 모르지만

그들의 생리와는 상관없이

부디 좋은 인연으로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사람의 마음으로 소망해 봅니다.

 

올빼미 띠도 아닌데 또 자정을 넘겼네요.

포근한 봄밤 되이소~ ^^

 

-11.04.22 강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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